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내놓은 대일(對日) 메시지의 핵심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다. 문 대통령은 이 표현을 7차례나 강조했다.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대상국) 배제 결정 직후 열린 긴급 국무회의에서 밝힌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 발언의 연장선상이다.
감정적인 ‘반일(反日)’보다는 경제 구조 개선 등을 통한 ‘극일(克日)’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또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직접적인 맞대응으로 한일 갈등의 확전에 나서기보다는 계속해서 외교적 해법 마련의 가능성을 열어뒀다. ○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해”
문 대통령은 이날 “지금 우리는 세계 6대 제조 강국, 세계 6대 수출 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다”며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 산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세계적 정보통신 강국이 되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74년간의 경제 발전의 성과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다”며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로 인한 타격 같은 피해를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업구조 개편, 부품·소재 국산화 등 ‘자강(自强)’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 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 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다며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는 뜻도 다시 한 번 밝혔다. ○ 직접적인 日 비판은 자제
문 대통령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태도와 수출 보복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면서도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한일 갈등의 단초가 된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고만 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과 관련해서도 문 대통령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도쿄 올림픽 보이콧 주장까지 나오지만 문 대통령은 섣부른 감정적 대응이 아닌 양국의 협력이라는 원칙을 다시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며 “우리는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대신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비전을 제시하며 우회적으로 일본을 압박했다. 문 대통령은 “책임 있는 경제 강국으로 자유무역의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며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은 책임감을 가지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하여 이웃 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대화·협력 택한다면 기꺼이 손잡을 것”
문 대통령은 한일 갈등의 외교적 해결도 다시 한 번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12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의 대응은 감정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던 기조를 이날도 이어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 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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