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에서 카라바조만큼 성서 속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한 화가는 드물다. 그가 죽던 해에 그린 이 그림 속엔 다윗과 골리앗이 등장한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무장한 거인 골리앗을 돌멩이 하나로 쓰러뜨린 용감하고 선한 승자의 상징이다. 그런데 적의 머리를 손에 쥔 다윗의 표정에서 승리의 기쁨이나 악의 처단에 대한 당당함 따윈 읽을 수 없다. 외려 슬픔과 연민이 느껴진다. 화가는 왜 이런 모습을 그렸을까.
생전의 카라바조는 늘 논란과 화제를 몰고 다녔다.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으로 로마에서 활동했던 그는 극적인 명암법을 이용한 대담하면서도 사실적인 종교화로 젊은 나이에 당대 최고 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주로 참수나 죽음과 관련된 선정적인 장면을 범속한 사람들을 모델로 그리다보니 종교화의 품위를 떨어뜨린다는 거센 비난을 받았다. 그림뿐 아니라 그의 삶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다혈질이었던 그는 폭행으로 수차례 감옥을 드나들었고, 나중엔 살인까지 저질러 나폴리로 도주했다. 생애 마지막 4년을 도주자로 살면서도 그림 그리기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그림은 도주에 지친 그가 과거를 참회하며 사면권이 있는 교황에게 바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참수된 골리앗의 얼굴은 너무도 역겹고 비참한 모습인데, 이는 바로 화가 자신의 얼굴이다. 스스로 자기 징벌을 한 것이다. 그런데 다윗의 얼굴도 화가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청년 카라바조가 어른 카라바조를 징벌한 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다윗 역시 승자가 되기 위해 결국 살인을 했으니 복잡하고 괴로운 심경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화가는 괴롭고 비참한 모습의 이중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
하지만 때늦은 참회였다. 사면을 받기 위해 로마로 오던 중 그는 급작스럽게 사망한다. 이견은 있지만 말라리아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다 허망하게 죽었다고 전해진다. 파란만장한 38년의 생을 살다간 그는 죽은 후에나 죄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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