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규 ‘서기 2000년이 오면’전
양파 마늘 방울 지푸라기 등 토속적 소재 깔끔하게 마감 처리
이국적 비주얼로 새롭게 탄생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심란하고 복잡하다. 벽지에는 양파, 마늘, 고추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광경이 어지럽게 혼합돼 있다. 그 가운데 샤먼이 사용할 법한 방울이 구의 형태로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양혜규(48) 개인전 ‘서기 2000년이 오면’의 풍경이다.
4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은 국내 미술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독일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하고,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작품이 소장·전시되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역시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활동을 하는 작가에 대한 국내의 기대를 알기에 부담을 갖고 개인전을 준비했다”고 털어놨다.
블라인드를 활용한 대표작 ‘솔 르윗 동차’를 비롯해 방울을 활용한 ‘소리 나는 운동 지도’,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 등 전시는 작가의 최근 활동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요소가 결합돼 ‘이미지 폭격’이라 느껴질 정도로 공간의 밀도가 높다. 이렇게 정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전시장의 풍경은 양혜규의 작업 특징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그의 작업은 특정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를 끊임없이 거부한다. 이를테면 동그란 방울이나 짚풀은 토속적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작가는 이들 소재를 극도로 깔끔한 마감의 조형물로 만들어 토속성을 제거해 버린다. 그 결과 국적, 시대 불명의 독특하고 기이한 이미지가 탄생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며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결합하는 작업 방식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 한쪽에 비치된 ‘융합과 분산의 연대기―뒤라스와 윤’은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국의 작곡가 윤이상의 연대기를 작가의 주관으로 교차 편집한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이란 무엇인지, 프랑스인이란 무엇인지 등 정해진 개념에 관한 끝없는 질문이 파생된다.
조형 언어를 따라가다 보면 국제 미술전에 본격적으로 눈을 돌리며 그 낯섦에 어리둥절했던 한국의 1990년대도 떠오른다. 당시 활발하게 논의됐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난해한 언어도 감지된다. 작가 또한 1994년 독일로 이주하며 완전히 다른 시간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혼란 그 이후에 이어질 작가 양혜규의 다음 목소리가 궁금해진다. 11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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