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8시(현지 시간) 프랑스 남부 페르피냥에 거주하는 나탈리 로헝 씨(48)와 화상통화를 시도했다. 퇴근 후 두 아들의 공부를 도와주고 있다는 그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피곤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도 쩔쩔맬 수밖에 없는 한국 워킹맘들이 떠올랐다. 사무실에서 마음 졸이며 시계를 보다가 집으로 허겁지겁 달려와 육아도우미 아주머니를 퇴근시킨 후 아이 저녁을 먹이고 설거지와 각종 집안일을 처리하다 곯아떨어지는 삶.
그런 기억과는 전혀 달라 보이는 모습이었다. 로헝 씨는 19세에 딸 마히엘라 씨(29)를 출산했고 30대 중후반에 13, 11세 두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성인이 된 딸은 벌써 세 명의 손주까지 안겨줬다. 그는 “정부의 각종 출산 지원제도를 충분히 이용했다. 운이 좋은 세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장과 지역 곳곳에 설치된 보육센터, 아동수당, 월세 등을 지원하는 주거수당, 생필품 및 교통비 지원까지…. 마침 그가 세 아이를 키운 지난 20여 년은 프랑스 사회 전체가 저출산 극복에 공을 들인 시기이기도 하다.
○ 1년 내내 육아도우미 이용 가능한 프랑스
1970년대까지 2.5명이 넘던 프랑스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수)은 1980년 1.85명, 1990년 1.77명으로 급락했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사회 진출 증가, 만혼, 가임여성 감소, 핵가족화, 고령화 등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2000년 1.89명으로 반등했고 2010년 2.03명으로 다시 2.0명대가 됐다.
로헝 씨에게 한국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린이집 등원, 유치원 및 초교 방과 후 자녀 돌봄 서비스 경쟁 등을 알려줬다. 그는 “그런 일로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자녀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오전 7시 반부터 자녀를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등에 맡길 수 있었다고도 했다. 퇴근시간인 오후 6시 반까지 최대 11시간 동안 아이를 보살펴 준다. 비용도 아이 1명당 월 20유로(약 2만7000원)에 불과했다. 사실상 무료나 마찬가지다.
방학 때도 달라지는 건 없다. 대부분의 한국 워킹맘은 ‘방학’이란 단어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통을 느낀다. 유치원이나 학교에 안 가는 아이를 돌보려면 양가 부모님의 도움, 학원 ‘뺑뺑이’가 불가피하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방학 때도 학교 안에서 아이 돌봄센터를 운영한다. 사실상 공휴일을 제외한 1년 내내 아이 돌봄을 이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교가 공립이어서 돌봄센터 비용도 사실상 공짜다. 소액의 점심값만 내면 된다. 로헝 씨는 “프랑스 엄마들은 공립 보육 및 교육기관의 질에 대한 신뢰가 꽤 높다. 또 비용이 거의 무료라서 ‘아이는 내가 낳아도 키우는 건 사회가 같이 키운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로헝 씨가 무탈한 워킹맘 인생을 살아온 때문일까. 딸 마히엘라 씨도 빠른 출산을 했다. 법학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그는 이미 3, 6, 8세 아이를 뒀다. 지금은 이혼한 상태에서 혼자 육아, 일,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마히엘라 씨와 같은 다자녀 엄마에게는 ‘가정 보육모’ 제도가 큰 도움이 된다. 정부가 인증한 양질의 육아도우미를 집으로 직접 불러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를 잠시 맡길 수 있는 ‘일시 어린이집’도 있다.
이처럼 프랑스는 ‘엄마들이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출산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국내총생산(GDP)의 2.9%를 관련 비용으로 지출했다. 한국(1.2%)의 약 2배다.
○ 남성의 육아 참여 늘린 스웨덴
1990년 2.13명이던 스웨덴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 1.54명으로 급락했다. 정부가 대책을 지속적으로 내놓은 끝에 2010년 1.98명, 2017년 1.85명으로 반등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저출산 원인을 육아 및 가사노동의 불균형에서 찾았다. 여성들의 고학력 증가와 사회 진출에도 여전히 여성 혼자 출산과 육아를 전담하는 소위 ‘독박 육아’가 심각했다. 이에 남녀가 가사와 육아를 공평하게 분담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대표적 예가 ‘육아휴직 아빠할당제’다. 스웨덴도 수십 년 전부터 남성 육아휴직제를 도입했지만 실제 휴직하는 남성이 드물었다. 제도만 있을 뿐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1990년부터 부모 전체가 아이 1명당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일수 총 480일 중 90일은 오직 아빠, 즉 남성만 쓸 수 있도록 규정했다. 육아휴직 중에도 급여의 75% 이상을 지급하도록 했다.
현재 스웨덴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무려 25%에 이른다. 거리에서도 유모차를 밀면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는 소위 ‘라테 파파’를 손쉽게 만날 수 있다. 남성이 적극 육아에 참여하자 “왜 같이 아이를 만들고 희생은 우리만 하느냐”는 여성들의 반감이 줄었다. 출산에 대한 거부감이 줄면서 출산율 증가가 나타났다. 반면 한국 남성의 육아 휴직률은 1%대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여성에 대한 지원책도 늘렸다. 자녀를 둔 여성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 근무시간의 절반만 일하거나 노동시간을 4분의 1로 줄여 일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출산휴가를 쓰더라도 휴직 직전 소득의 80%를 1년 동안 수당으로 받을 수 있는 ‘부모 보험제’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스웨덴도 가족 예산이 GDP의 3.5%를 차지한다.
○ 아동 의료비 늘린 영국과 독일
영국과 독일은 출산과 육아로 인한 각종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 영국은 출산 및 아동 의료비가 전액 무료다. 모든 진료비가 건강보험인 국가건강서비스(NHS)에서 나간다. 출산 전후 산모의 집에 건강도우미가 방문해 산모를 관리해주는 제도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2000년 1.64명까지 하락했던 영국 출산율은 2010년 1.92명으로 올랐다.
독일은 출산 직후부터 만 18세가 될 때까지 다자녀가구에 직접 수당을 지급한다. 아이 수가 많을수록 수당도 늘어난다. 첫째, 둘째 아이는 매달 164유로, 셋째는 170유로, 넷째는 195유로를 준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업을 구하지 못하면 성인인 25세까지도 매달 이 지원금이 나온다. 2010년 1.39명이던 독일의 출산율도 지난해 1.57명으로 반등했다.
더 파격적인 비용 지원을 약속한 국가도 있다. 헝가리는 출산을 독려하기 위해 신혼부부에게 최대 약 4000만 원을 지원한다. 올해 2월에는 아이 셋을 낳으면 각종 대출 일부를 탕감해주고 넷을 낳으면 아예 소득세를 전액 면제하는 제도도 발표했다. 합계출산율이 1.45명에 불과해 유럽 평균 1.58에 미치지 못하자 긴급 처방을 한 셈이다.
이처럼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유럽 각국은 공통적으로 △출산 및 보육 인프라 집중 구축 △육아의 양성평등 △각종 수당 및 의료비 지원 등을 집중적으로 시행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 韓 보육 인프라 확충 시급
한국은 어떨까. 정부가 2016년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는 △청년 기술창업 활성화 △대학등록금 부담 경감 등 언뜻 보기에 당장 저출산 해결과는 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과제도 담겼다. ‘가능한 정책 과제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는 올해 초 기본계획을 수정해 보육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맞추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김종훈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을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없다.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며 “아이를 낳고 싶지만 경력단절을 우려해 임신을 고민하는 여성, 아이를 맡길 곳을 찾지 못하는 워킹맘 등 지원 대상을 좁혀 집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출산보조금 지급 등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질 좋은 어린이집 확대 등 보육 인프라부터 제대로 갖춘 뒤에 아이를 낳으라고 독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지방 균형 발전 등 국가 차원의 중장기적 대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한국의 보육 복지는 많이 개선됐다. 그래도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며 “인구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과거부터 경쟁이 심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출산보다는 자신의 생존에 초점을 맞춘다”고 진단했다.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린 한국은 유럽에 비해 경쟁이 훨씬 심해 출산율을 좀처럼 늘리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정책학과 교수)도 “사회구조 및 사람들의 의식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 유럽은 수십 년 전부터 한부모, 동성부모, 동거 등 전통 결혼이 아닌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해왔다. ‘워라밸’을 정착시키고 여성 고용도 늘렸다. 각국의 출산율이 반등한 시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 대책보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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