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이후 답보 상태였던 한일 관계가 이낙연 국무총리의 22일 방일을 앞두고 꿈틀거릴 조짐이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의 회담을 마지막으로 1년 넘게 열리지 않았던 한일 정상회담이 이 총리 방일을 계기로 다음달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갈등의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게 부담인 만큼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흐름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외교에서 ‘무조건 안 된다’는 건 없다. 다양한 가능성은 항상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이 꾸준히 한일 갈등의 외교적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의했던 만큼 그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청와대는 이 총리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면담 결과를 지켜본 뒤 실제 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7월 시작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흐름이 있어야 정부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전향적 검토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한일 정상이 만나 또 다시 얼굴만 붉히고 헤어진다면 갈등 상황이 더 복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이 다음달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19일 한일관계 소식통을 인용한 기사에서 “한국 정부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정상회담을 내달 국제회의에 맞춰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다음 달 ‘아세안+3(한중일)’ 관련 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앞서 아베 총리도 16일 국회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과의) 대화는 항상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기회를 닫을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소미아가 다음달 23일 효력이 끝난다는 점도 11월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는 또 다른 이유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결정은 실수(mistake)”라고 할 정도로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해 백악관의 우려가 큰 상황에서 청와대의 고민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지일파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나 일본 모두에게 양국 갈등을 풀 수 있는 골든타임이 한달 정도 남았다고 보면 된다”며 “일본도 이 총리의 방일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물론 이 총리의 방일 자체만으로 꽉 막혔던 한일 갈등이 풀릴 것으로 보는 시각은 그리 많지 않다. 총리실은 물론 청와대도 “한술에 배 부르랴”는 분위기다. 이 총리가 아베 총리와 만나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어내도 현실적으로는 성공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석 달 넘게 양국 실무 라인이 별다른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 총리 방일 뒤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톱-다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게 가장 최선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이 총리 방일 이후 일본이 당장 경제 보복을 철회하지 못하더라도 ‘통상 당국 간 협의를 개시한다’는 수준의 입장을 밝혀도 정상회담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교두보는 확보하게 되는 것”며 “일본통인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이 총리를 수행하는 만큼 별도의 양국 간 실무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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