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부는 “예산에 넣고 보자”… ‘입법 공백’에 14조 허공에 뜰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8일 03시 00분


입법도 안된채 예산 포함된 사업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내년 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입법 공백’을 지적한 예산사업은 총 13개로 예산 규모만 14조3234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입법부인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표류하게 된 측면이 크지만 정부가 ‘예산 편성부터 하고 보자’는 식으로 국회 입법 논의를 고려하지 않고 예산안에 포함시킨 사업들도 있다.

○ 법안 제출도, 공론화도 없이 예산 편성


예결특위는 최근 검토보고서를 소속 여야 의원 50명에게 배포했다. 여야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12월 2일 이전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본격적인 예산 심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예결특위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법무부의 형사공공변호인 사업은 내년 예산안에 17억9400만 원이 편성됐다. 재판 단계에서 받을 수 있는 국선변호인제도처럼 수사기관에 체포된 피의자도 무료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지만 관련법 개정안은 법제처 심의 중으로 현재까지 국회에 제출되지 않은 상태다. 보고서는 “제도 시행 전에 먼저 근거 법률을 마련할 필요가 있으며, 변호사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수렴을 통한 공론화 절차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에 반대해온 대한변호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 사항이어서 정부가 예산부터 편성하면서 무리하게 속도를 내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익형 직불제 제도개편 사업’은 쌀 직불금, 밭농업 직불금 등 기존의 농업직불금을 통합해 생산작물과 관계없이 직불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내년 예산안에 1조605억 원이 새로 편성됐다. 관련 내용이 담긴 ‘농업소득의 보전에 관한 법률’은 지난달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처음 논의됐지만 여야 이견으로 절충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보고서는 “현재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므로 국회 법률안 심사 결과를 고려해 사업예산 규모와 내용 및 재원 확보 방안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구축 사업에는 107억1900만 원이 편성됐다. 기존 종이 기반의 복잡한 재판 절차를 간소화하고 사법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사법정보 공개, 비대면 소송 확대 등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예결특위는 “민사소송법에서는 엄격한 공개 심리를 적용하고 당사자 등이 법원에 출석해 변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민사소송법 개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비디오 등 중계장치나 인터넷 화상장치를 이용한 원격영상, 온라인으로 변론이나 증인신문 등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예결특위는 △교육부의 대학평생교육원 강좌 개설 지원(49억1200만 원) △환경부의 유역수도지원센터 운영(138억5600만 원) 등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집권 여당 책임” vs “이례적 아냐”


이 같은 입법 근거 없는 예산 편성에 대해 정부와 당정 협의를 하는 집권 여당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부가 여당의 정책 공약을 예상해 예산을 편성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며 “여당이 간과 쓸개를 내주더라도 야당을 설득하거나 압박을 하든 입법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재정부는 관련 법안 통과 전에 예산안에 반영하는 건 이례적인 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다음 연도 예산을 짜는 시기와 법 개정 시점과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예산은 관련 법률의 제정을 전제로 편성한다는 것. 관련법 통과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 예산 심의 절차에서 조정을 통해 감액하고 감액된 예산의 경우 반드시 필요한 정책 예산이면 목적예비비로 편성해 반영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국처럼 의회가 예산편성권을 가져야 이런 혼선이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황형준 constant25@donga.com / 세종=김준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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