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상대로 기존의 5배에 이르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이 독일 등 유럽의 동맹 및 파트너 국가들을 상대로도 분담금 증액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미국의 거센 압박에 유럽 내에서도 동맹에 대한 의구심과 함께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만날 계획이다. 백악관은 9일 보도자료에서 이 일정을 공개하면서 “나토 동맹국의 방위비 증액 진전 및 더 공평한 분담금 보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외부의 위협에 대한 나토 동맹국의 방어와 억지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라며 테러리즘 대응, 5세대(5G) 네트워크와 핵심적 인프라 시설 보호, 사이버 공격 대응능력 구축 등을 언급했다. 5G를 콕 찍은 것은 중국 화웨이에 대한 공동 대응도 강조할 것임을 시사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맞아 독일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도 나토의 ‘큰 손’ 회원국인 독일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제기했다. 국무부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8일 크램프-카렌바우어 독일 국방장관을 만나 시리아, 이란, 러시아, 중국의 위협 등 현안과 함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의제로 꺼냈다. 국무부는 보도자료에서 “두 장관은 대서양과 전 세계의 안보 위협에 대응하는 데 방위비 분담이 핵심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말에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나토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찾아 “공동안보에 무임 승차자는 있을 수 없다”며 증액을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 압박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올해 초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나토 회원국들은 내년 말까지 1000억 달러의 추가 부담금을 낼 것”이라고 밝혔지만 4월 나토 창설 70주년을 맞아 워싱턴을 방문한 자리에서 백악관의 강도 높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에 또 다시 직면했다.
그러나 미국이 막상 시리아 철군은 동맹국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등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는 것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을 상업적 대상으로 본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지적하며 “나토 동맹은 뇌사 상태(brain death)”라고 평가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2014년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기로 약속했으나 현재까지 7개국만 이를 지킨 상태. 1000억 달러 증액 합의 관련해서도 대다수 회원국이 이를 어떻게 이행할지에 대한 계획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4%까지 국방비를 늘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올해 국방예산은 국내총생산(GDP)의 1.36%. 국방예산 증액에는 일단 합의했지만 국방부가 GDP의 2% 달성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기간이 2031년까지로, 앞으로 12년이나 남아 있다. 독일에서도 국방예산 증가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여서 벌써부터 여당인 기독민주당(CDU)와 연정의 한 축인 사민당(SPD) 내 이를 둘러싼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 신문은 “독일의 증액 약속에도 불구하고 시간 등의 변수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해하지 않을 결과”라고 평가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