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시청에서 전철로 30분가량 떨어진 아스페른 제슈타트. 아스페른 호수를 중심으로 신도시 건설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호수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한 5층짜리 신축 주상복합건물은 1층 상가, 2∼5층 임대주택으로 구성돼 있었다. 겉으로 봤을 때 목조건물이라는 점을 빼면 특별한 점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니 에너지 효율을 최대로 살린 스마트 빌딩이었다. 이 건물은 옥상에 설치된 태양열 패널과 태양광 패널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태양광과 태양열 시스템의 혼합)을 통해 난방 에너지를 생산한다.
지하주차장의 공기 가열 펌프는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열기와 지열을 에너지로 바꿔 냉방과 온수, 정수에 활용한다. 입주민들의 에너지 사용은 스마트 홈 제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기록된다. 이렇게 모은 입주 가구들의 에너지 사용 추세와 사용량을 분석해 앞으로 짓는 스마트빌딩에 참고한다. ○ 방치된 옛 공항 터가 ‘스마트 시티’로
아스페른 제슈타트 프로젝트는 1970년대 공항이 폐쇄된 뒤 오랜 기간 방치돼 개발이 더뎠던 북동부 아스페른 호수 일대 2400만 m² 터에 주택, 사무실, 상가 등이 들어선 신도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빈 시청 등이 2009년부터 약 20년 동안 50억 유로(약 6조5974억 원)를 이 프로젝트에 투입한다. 현재 전체 개발의 3분의 1 정도가 진행됐으며 1만2000명이 아스페른 제슈타트에 거주하고 있다. 빈 시청은 2030년까지 2만5000명이 입주해 2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스페른은 개발 초기부터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교통, 환경, 주거, 시설 비효율 등 갖가지 도시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들이 편리하고 쾌적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스마트 시티로 구상됐다. 서유럽에선 대규모 신도시 건설 자체가 흔하지 않으며 스마트 도시 추진도 이례적이라 일종의 실험실 역할도 하고 있다. 아스페른은 확고한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다. 빈 도시혁신연구소의 니콜라우스 주머 매니저는 “구상 단계부터 ‘에너지 효율’과 ‘삶의 질’을 프로젝트의 목표로 삼았다”며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하철로 대표되는 대중교통과 녹지공간을 확보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도시가 조성되며 빈의 지하철 2호선이 아스페른 호수까지 연장됐다. 주머 매니저는 “지하철이 연결돼야 자동차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신도시를 조성하며 가장 먼저 지하철 연결을 추진했다. 또 아스페른 호수를 중심으로 충분한 녹지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 쓰레기 소각열로 난방, 지열로 냉방
아스페른 제슈타트 주거단지와 학교에는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 도입됐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발코니와 창은 자연광이 가장 많이 들어오도록 설계됐다. 자연광 활용을 최대한 높여 조명 사용을 줄인다는 취지다. 난방에는 쓰레기 소각열을 활용하고 냉방은 지열을 이용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췄다. 일부 건물에만 이런 시스템이 적용된 게 아니라 모든 주택에 이런 시스템을 적용했다.
빈에서 가장 큰 학교 캠퍼스인 아스페른의 ‘캄푸스 제슈타트’는 ‘에너지 자급자족’ 캠퍼스로 불린다. 건물 옥상에는 태양열 및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고, 패널에서 흡수한 에너지는 열펌프를 통해 저장된다. 이렇게 회수한 에너지로 온수와 난방에 사용한다. 캄푸스 제슈타트에선 초등학생 200명과 7개 특수학급 학생들이 교육을 받는다.
신도시 동서 방향으로는 아스페른 호수와 공원 등과 연결되는 녹지축이 형성돼 있다. 이 녹지축 가까이엔 여러 상가가 들어섰는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상가를 찾으면 걸어서 녹지축을 지날 수 있다. 아스페른 제슈타트 프로젝트 관계자는 “녹지는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건물 녹화도 진행 중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최대한 녹지비율을 높이기 위해 건물 옥상 등에도 녹지가 조성됐다. 캄푸스 제슈타트 건물 옥상에는 햇볕을 직접 받는 부분을 목재로 만들거나 식물을 심었다. 건물 녹화로 햇볕이 강렬한 여름철에는 건물 외벽의 온도를 2, 3도 정도 낮출 수 있다. 또 주택 외벽에 담쟁이덩굴 등 식물을 심어 녹화하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일부 건물에는 녹지용 키트가 외벽에 설치돼 있다. 1층에 설치한 키트에서 자라는 식물은 옥상까지 이어진 구조물을 따라 자라며 건물 외벽을 덮는다. ○ ‘자가용이 불편한 도시’ 구현
자동차 이용은 최대한 줄였다. 임대주택에는 별도의 주차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다. 주차하려면 도로변이나 공공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분양주택에는 주차공간이 설치됐지만 가구당 0.7대 정도에 불과하다. 그 대신 버스, 지하철, 공유자전거 등을 활용해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곳곳에는 공유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거치대가 보인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도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쉽게 이용할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타고 온 자전거를 거치대에 두면 된다. 아스페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여러 계층이 섞여 사는 ‘소셜 믹스’를 구현했다는 점이다. 분양주택과 임대주택 주민이 함께 살 수 있도록 했다. 아스페른의 임대주택은 무주택자라면 중산층 이상도 입주할 수 있어 다양한 계층이 모일 수 있게 설계했다.
▼ 스마트 가로등 켜지고… 건물벽엔 식물이 자라고… ▼
빈 ‘스마트 시티 프로젝트’ 눈길… 2050년까지 신재생 에너지 비중 50%까지 확대하고 친환경차 운행
오스트리아 빈 시청은 2050년을 목표로 스마트 시티 구현 프로젝트인 ‘스마트 시티 빈 프레임워크’를 추진하고 있다. 2011년 처음 구상된 이 프로젝트는 2014년 6월 빈 시의회의 동의를 얻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시민들에게 최고 수준의 삶의 질을 제공하겠다는 빈 시청의 장기 도시 전략으로 자원, 삶의 질, 혁신 등 3가지 분야에 걸쳐 추진된다.
이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관광지인 케른트너 거리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케른트너 거리는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미사가 이뤄졌다는 ‘슈테판 성당’, 흑사병이 사라진 것을 기념하며 세운 ‘삼위일체상’, 호프부르크 왕궁 등과 함께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곳이다.
케른트너 거리를 중심으로 뻗어 나온 골목길에는 상점과 음식점이 빽빽한데, 골목으로 들어서면 머리 위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는 스마트 가로등을 발견할 수 있다. 생체인식 센서가 부착된 가로등은 행인이 가로등 인근을 지나면 불이 켜지고 지나가면 꺼진다. 단순해 보이는 기술이지만 스마트 가로등을 활용하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고 골목길을 다니는 유동인구에 대한 데이터도 쌓을 수 있다. 빈 시청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추가로 가로등을 설치하거나 상가 입점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도심이 일종의 스마트 시티 실험장인 셈이다.
빈 시청은 이런 기술 실험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큰 폭으로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곳곳에선 건물 녹화가 진행되고 있다. 건물 외벽 창 사이에 화분 키트를 부착해 놓거나, 화분을 빽빽하게 설치해서 건물 외벽 전체를 푸른빛이 보이도록 만들어 놓았다. 또 외벽을 따라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키트도 곳곳에 설치했다. 스마트 시티 계획에는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 개인 이동수단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8%에서 2030년 15%로 줄이고 2050년까지 모든 차량을 친환경 차량으로 바꿀 계획이다. 건물의 냉방과 난방에 사용하는 에너지를 매년 1%씩 감축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한다. 녹지 공간은 전체 도시 면적의 50% 이상을 유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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