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서 대립과 긴장의 상징으로 비쳤던 북한이 ‘핑크빛’으로 물들고 있다. 무대는 최근 방송 중인 tvN ‘사랑의 불시착’이다.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 땅에 떨어진 재벌가 상속녀 손예진과 북한 장교 현빈의 로맨스가 북한을 배경으로 펼쳐지며 시청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시청자 사이에서는 보기 힘든 ‘남북 로맨스’에 “신선하다”는 반응이 쏟아진다. 인천시 연수구에 사는 김명숙(58) 씨는 “다른 로맨스 드라마는 결과를 예상하기 쉬운데,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이란 배경 때문에 그렇지 않다”며 “주말마다 20대 딸과 함께 각종 추측을 하며 ‘본방사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과 로맨스 이야기라는 색다른 조합에 전문가들도 호기심 어린 시선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로맨스 드라마에서는 필수 요소다. 주로 신분의 차이, 숨겨진 가족 관계 등이 그런 역할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그 자리를 ‘북한’이 대신하면서 극적인 재미를 더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극중 손예진과 현빈을 각각 남북한의 또 다른 상징으로 해석한다면 로맨스를 넘어 체제의 문제로까지 분석의 시야를 확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극중 북한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이 빚어내는 풍경이 최근 방송가에서 주목 받은 ‘청정 로맨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도 있다. 작년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이 가상의 바닷가 마을 옹산에서 펼쳐지는 로맨스를 담아 큰 인기를 끌었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주로 도시에서 펼쳐지는 로맨스 장르를 소박한 북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면서 신선함을 자극한다”고 평가했다.
‘아랫동네’(남한) 물품들을 몰래 사고파는 장마당, 김치냉장고 개념의 ‘김치움’ 등 북한 주민들의 생활 이모저모를 녹인 장면들도 시청자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곽문안 보조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탈북자를 취재한 박지은 작가의 노력이 빚은 결과다. 탈북자 출신인 주성하 동아일보 북한전문 기자는 최근 SNS를 통해 “고증이 장난이 아니다. 자문한 사람들 누구냐”며 이 드라마의 실감나는 북한 묘사를 극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