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프로축구 K리그2(2부) 대전 시티즌을 인수한 뒤 허정무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65)를 사장 격인 이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이미 한국 축구사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선수 시절 대표팀을 오가며 유럽 네덜란드 리그에서 활약했고, 국내 여러 프로축구팀을 이끌면서 한국 축구대표팀 사령탑도 두 번이나 맡았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는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대업도 이뤘다.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등 행정가로도 일했다. 이제 그에게 경영자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허 이사장이 꾸려갈 대전 하나시티즌의 모습에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부담감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룬다”는 하소연부터 했다. 한국 프로축구의 변화를 선도할 역할 모델로 만들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내 “신나는 축구로 새바람을 일으키겠다”고 말했다. 승패에 집착하지 않고 명랑하고 재밌는 축구로 팬들에게 다가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3년 안에 구단이 가야 할 가시적인 방향이 나올 것이고 5년이면 구단 예산의 약 30∼50%는 벌 수 있다는 각오로 수익 개선에 나서겠다”고도 말했다. 축구단이 모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 100% 의존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 수익을 내야 하고, 승패도 중요하지만 재밌는 축구로 팬들이 사랑하는 구단을 만들겠다”는 뜻도 밝혔다. 팬이 없는 구단은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사장 취임 직후 대전시와 대전월드컵경기장을 25년 장기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적극적인 마케팅을 위해서다. 그는 “그동안 사실상 방치에 가까울 정도로 경기장 시설을 활용하지 못했다”며 “이젠 팬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시설을 완전히 바꿀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장 외관을 밝게 바꾸고 옥외 광고 유치도 고민하고 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은 유성 나들목에서 가까워 외관만 잘 꾸미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꼭 보고 지나가는 지역 명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선수 및 감독, 행정가로 유럽과 일본, 미국의 축구 시장까지 두루 돌아본 허 이사장은 최근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직업체험관인 ‘키자니아’를 찾았다. 아이들이 비행사, 셰프 등 수십 가지 직업을 체험하는 곳으로, 연간 입장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 그는 아이들 체험을 위해 부모도 따라올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 주목했다. 그는 “축구도 가능하다고 본다”며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오게 하는 축구 체험 프로그램도 개발하겠다”고 말했다.
대전은 한때 ‘축구 특별시’로 불렸다. 1997년 창단한 대전은 2003년 18승 11무 15패로 12개 팀 중 6위를 차지했다. 우승 경쟁을 벌인 것은 아니지만 2002년 단 1승에 머물렀던 팀이 환골탈태해 평균 관중 1만9000여 명, 주중 최다 관중 4만3700명을 기록하면서 붙은 별명이었다. 하지만 이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고 승강제가 생긴 뒤 2014년 2부로 강등됐다. 2015년 1부로 올라왔지만 이듬해 2부로 다시 떨어진 뒤 아직까지 성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 결과 대전은 창단 20주년까지 사장이 19명이나 됐다. 허 이사장은 “거의 1년마다 바꾼 셈”이라며 “스포츠는 전문가가 연속성을 가지고 해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든데”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허 이사장은 인터뷰 말미에 “희망은 있다”고 했다. 대전이 축구 특별시로 불렸다는 것은 시민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잠재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란다. “그 열정을 되살리도록 하겠다”는 그의 표정에서 성공한 많은 경영인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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