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펼쳐진 풍경의 한가운데 반사경이 톡 튀어 나왔다. 차를 운전하다 굽은 길을 만나면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피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자는 이야기다. 한국화가 김선두(62)의 ‘느린 풍경’은 삶에서도 필요한 느림의 순간을 풍경으로 표현한다.
22일부터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김선두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김선두의 작품은 장지(한지)에 바탕 작업을 하지 않고 바로 색을 중첩한다. 옅은 색을 겹겹이 올리면서 종이가 색을 머금게 한다. 흑백에 갇히지 않은 화려한 채색과 재기발랄한 구도가 ‘현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구체적인 소재를 활용한 것도 특징이다. 누구나 쉽게 감상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전시장의 ‘철조망 블루스’(2018년)는 도시에서 흔히 보는 철조망을 활용해 굽이치는 선의 리듬감을 자아낸다. ‘마른 도미’(2019년)는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도미의 기괴한 모습을 강조해 그렸다. 작가는 “한 몸을 유지했을 때는 생명을 지닌 물고기가 양극단을 향해 찢어져 내면 없이 외피만 남은, 죽은 몸이 된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자화상 ‘행―아름다운 시절’(2019년)은 20대 후반 시절 작가의 모습과 지워진 달력을 겹쳤다. 겹겹이 세월이 쌓이면서 먼지처럼 뿌옇게 되는 매일의 일상이 과거의 자신과 같다는 이야기다.
김선두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표지를 그리고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에서는 오원 장승업의 그림 대역을 맡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는 장지화 16점과 유화 3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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