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그의 꿈은 나이 서른 전에 1억 원을 모으는 것이었다. 뉴욕에서 캐비아, 푸아그라, 캔디 등을 수입 판매했다. 28세 때 목표를 이뤘지만 기쁨보다는 공허감이 더 컸다. 얼마 뒤 같은 날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당신이 사관 가족의 일원으로 살기를 기도하겠다”는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사관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때 “이게 콜링(Calling·소명)이구나. 피할 수 없으면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늦깎이로 구세군 사관학교에 입교한 그는 35세에 사관으로 임관했다.》
6일 한국구세군 책임자로 취임하는 장만희 사령관(62) 스토리다. 이민자 출신으로는 첫 구세군 사령관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구세군회관에서 그를 만났다.
구세군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군대’를 표방하며 군대식 조직을 따른다. 각 군국(軍國)의 최고지도자는 사령관이며 계급으로는 통상 부장(副將)이다. 성직자는 사관 호칭을 쓰고 계급은 부위, 정위, 참령, 부정령, 정령, 부장으로 올라간다. 장 사령관은 증조할아버지인 장춘경 사관부터 4대째 구세군 사관의 맥을 잇고 있다.
―사업가로도 유망했던 것 아닌가.
“일찍 목표를 달성한 걸 보면 자질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웃음). 태어난 곳이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구세군 관사였다. 미국에서 사관이 됐지만 언젠가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태어나 60여 년, 이 자리에 있으니 운명 같다.”
―국내에서는 자선냄비로 잘 알려진 구세군이 개신교단인 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미국 분위기는 어떤가.
“미국에서 구세군은 코카콜라, 맥도널드 햄버거만큼 유명한 이름이다. 하지만 구세군의 종교적인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가장 잘 숨겨진 비밀’이라고 한다. 구세군은 교단으로 세력화를 추구하지 않아 대형 교회도 없다. 개신교 내에 교단 갈등이 있지만 구세군서 모이자고 하면 잘 모인다.”
―지난해 자선냄비 성과는….
“연말 집중 모금 기간 기준 약 57억 원으로 전년보다 2.35% 늘었다. 모금액보다는 기부금을 후원자 뜻에 맞춰 선하게 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성인재활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재활이란 표현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이 재활센터는 알코올과 마약중독자를 위한 것으로 육체적 재활을 포함해 정신적, 영적 재활을 담당한다. 50개 주에 100곳이 있는데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미 연방정부가 제공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규모다. 내가 주로 활동하던 서부 지역은 13개 주에 25개 센터가 있다.”
―어떻게 재활을 돕나.
“미국 대통령이 전쟁을 선언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게 중독 문제다. 가족이나 직장에서 원인이 생긴 경우도 많다. 센터에서는 6개월간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며 생활 습관을 바꾸게 하고 작업 치료도 병행한다.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 일터로 간다. 기부된 옷을 골라 옷걸이에 거는 작업을 반복해 육체적 능력을 깨운다. 90일 정도 지나면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회복되는데 이후 개인의 능력과 취향에 맞춰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8월 아시아태평양지도자회의 참석을 위해 브라이언 패들 세계구세군 대장 등 지도부가 한국을 찾는다.
“일본이 올림픽 때문에 개최가 어렵다고 해 한국에서 열린다. 구세군 대장의 비전을 공유하면서 지역 발전을 위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주셨다.’ 가장 중요한 단어는 ‘누구든지’다. 중독자나 노숙인 등 소외된 이들을 모두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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