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치료에 사용하는 면역항암제는 화학항암제와 표적항암제에 이어 등장한 3세대 항암제다. 약물이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지 않고 몸에 있는 면역세포로 하여금 암 세포를 공격하게 한다. 화학항암제나 표적항암제와 달리 독성과 내성이 없어 ‘기적의 치료제’라 불린다.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면역항암제 시장 규모는 1269억 달러(약 147조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3세대 항암제는 아직 미완성이다. 면역세포가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고 몸속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CRISPR-Cas9)를 활용해 면역세포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암 환자 3명의 면역세포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성공한 미국 연구팀이 올해 인체를 대상으로 한 첫 임상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칼 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의대 세포면역치료센터 소장 연구팀은 암 환자에게 유전자 편집 면역세포를 주입한 결과 부작용 없이 장기간 생존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7일자에 발표했다. 미국에서 유전자 편집을 거친 면역세포로 임상시험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의약품의 안정성과 유효성을 증명하는 임상시험은 1∼3상 시험으로 나뉜다. 1상에서 3상으로 갈수록 실험 규모가 커진다. 1상 시험은 의약품이 안전상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효능이 있는지 확인하는 단계다. 주로 소수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연구팀은 화학항암제와 표적항암제가 듣지 않는 60대 암 환자 3명을 대상으로 1상 시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먼저 이 환자들에게서 면역세포를 추출한 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PD-1 등 암 세포 공격을 방해하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유전자 3개를 제거했다. 그런 다음 이 세포들을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고 몸에서 안전하게 살아남는지를 관찰했다.
연구팀은 이 환자들에게서 면역세포 주입 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았고 최대 9개월까지 생존하는 것을 확인했다. 몸에서 살아남은 면역세포를 몸 밖으로 추출해도 계속해서 암 세포를 없애는 능력을 가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준 교수는 “그동안 유전자 편집을 거친 면역세포를 사람에게 다시 주입할 경우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려진 것이 없었다”며 “이번 연구는 이 새로운 방식이 안전하고 실현 가능한 암 치료 접근법이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유전자 편집 면역세포를 이용한 면역항암제가 시판되려면 갈 길이 멀다. 나머지 2, 3상 임상시험을 모두 거쳐야 한다. 미국 바이오산업협회에 따르면 신약 임상실험은 최종 상용화까지 평균 9.6%의 성공률을 보인다. 2상은 30.7%, 3상은 58.1%의 성공률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이 소요되는 2상과 3상 임상시험에서 탈락하는 약물이 수두룩하다는 의미다. 신약 출시 이후 사후관리에 해당하는 ‘4상’ 임상시험도 남아있다. 송교영 서울성모병원 위암센터장은 “1상 임상시험을 통과했다는 것은 신약의 독성과 효과 여부를 확인했다는 의미”라며 “2상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강력한 신약 후보물질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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