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천주교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산에 따라 각 본당은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2주 동안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와 모임 등을 중지한다”는 취지의 담화문을 밝혔다.
하루 뒤, 26일 찾은 서울 명동대성당(사진)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입견인지 몰라도 평소보다 사람들이 적어 보였고, 오후에는 성당 내부에 대한 방역 작업이 이뤄졌다.
이날 다시 제주와 원주 교구의 발표로 한국 가톨릭사 236년 만에 모든 성당의 미사가 중단됐다. “한국은 물론 세계 가톨릭사에서도 이런 상황은 유례가 없다”는 게 교구들의 협의체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측의 반응이었다.
초유의 미사 중단은 가톨릭 교계의 입장에서 뼈를 깎는 차원의 결단이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에 따르면 염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는 후문이다. 지역 본당의 의견을 청취하고 여러 차례 기도한 뒤에도 “미사를 중단하자”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일곱 글자는 사제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금기어’였다.
이날 서울대교구 한국교회사연구소를 취재하면서 그 말의 의미와 실체를 좀 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소장인 조한건 신부는 여러 책 속에서 ‘첨례경(瞻禮經)’이라고 불리는 작고 낡은 책을 꺼내 보여줬다. “지금 남아 있는 첨례경은 1864년경으로 거슬러 간다. 사제가 없을 때 미사를 대신할 수 있도록 기도문과 절차를 담았다. 박해와 전쟁 등으로 신자들끼리 모여 미사를 중단 없이 진행했다는 의미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톨릭계의 미사 중단이 발표되자 각 교구에는 나이든 신자들을 중심으로 “전쟁 통에도 미사를 진행했다. 신부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미사를 중단하느냐”는 항의성 문의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가톨릭의 미사는 사제들이나 신자들 모두에게 결코 중단될 수 없는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이런 정서를 잘 아는 가톨릭계 지도자의 마음이 염 추기경과 수원교구장인 이용훈 주교 등의 담화에서 잘 드러난다. 한마디로, 국가적 위기의 극복과 신자들의 안전과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염 추기경은 “우리가 당분간 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지만, 병마와 싸우는 이웃의 아픔으로 묵상하며, 기도와 희생 속에 사순시기를 보내 달라”고 당부했다.
가톨릭 전체 교구의 미사가 중단된 가운데 개신교의 주일(일요일) 예배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독실한 신앙이 있다면, 꼭 예배당에 모여서 지내야 예배는 아니다”라는 한 목회자의 조언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염 추기경 담화의 제목은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한 것이었다. “너희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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