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81개국으로 번지고 3200명이 사망했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의 정의조차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WHO 타렉 야사레비치 대변인은 4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을 정의하기 위해 여러 기구가 협력하고 있다”며 “정의를 규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야사레비치 대변인은 “WHO는 6단계로 구성됐던 인플루엔자에 대한 팬데믹 체계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며 “이런 변화는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A(H1N1)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인플루엔자에 대한 팬데믹 정의는 있지만,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 정의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WHO가 앞서 1월 30일 발표한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는 전염병의 위험을 경고하고 ‘차단’에 중점을 두는 선언이다. 반면 펜데믹 선언은 이미 세계적으로 확산돼 개별 국가별 치료와 억제 등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 WHO가 지금까지 팬데믹을 선언한 경우는 1968년 홍콩독감 사태와 2009년 6월 H1N1 두 번뿐이다.
지금까지 펜데믹의 기준은 ‘강력한 전염성’을 토대로 ‘사람 대 사람 간’ 전염이 이뤄져야 한다. 한 지역 내 유행병인 에피데믹(epidemic)을 넘어 ‘동일한 전염병이 2개 대륙 이상에서 발생해야 한다. 마이크 라이언 WHO긴급대응팀장은 “전 세계 모든 인구가 감염위기에 놓여야 팬데믹”이라며 “용어 기원이 그리스어로 모든 사람을 뜻하는 팬데모(pan demo)에서 왔다”고 설명했다고 CNN은 전했다.
펜데믹 선언의 기준이 되는 감염자 수, 사망률 등 세부 사항이 없어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세계보건법 전문가 미국 조지타운대 고스틴 교수는 뉴욕타임즈(NYT)와의 인터뷰에서 “팬데믹 선포는 주관적이며 엄격한 규칙이 없는게 맞다”고 설명했다.
WHO는 향후 전염병이 창궐할 때마다 각각의 펜데믹 정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세밀한 기준을 세우면 불필요한 공포를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2009년 펜데믹 선포 당시 H1N1 감염국가는 74개국, 사망자는 150명 정도였다. “아직 팬데믹이 아니다”란 입장을 고수하다 이제야 ’정의를 논의 중‘이라고 밝힌 WHO에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다.
WHO의 오락가락 행보가 과거의 비판을 지나치게 의식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WHO는 2009년 팬데믹을 선포했지만 H1N1 확산이 예상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WHO가 백신을 파는 거대 제약회사 이익을 도왔다는 비판이 거셌다. 2014년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의 경우 WHO는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는 아니라고 발표했다. 이후 아프리카 전역으로 확산됐고 결국 1만1310명이 사망해 ’늦장 대응‘이란 질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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