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비상]
노인도 줄서야해 ‘거리 두기’ 역행… ‘미리 확보’ 가수요는 줄어들 듯
“생산원가의 50%만 인정해 손실”… 정부 일괄 수용방침에 생산 중단도
5일 정부가 1인당 마스크 구매량을 일주일에 2장으로 제한하는 ‘준(準)배급제’ 수준의 마스크 대책을 내놓은 것은 현재 생산량으로는 도저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게 불가능하다면 수요를 줄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결론을 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번 대책에는 마스크 구매량에 제한을 둔 것뿐만 아니라 구입 방식 자체도 더 번거롭게 만든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특히 노인과 영유아의 대리 구매를 금지한 것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당장 6일부터 동네 약국에 유모차를 몰고 줄을 서는 풍경이 관찰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한창일 때 마스크 2장씩을 사기 위해 가족이 길거리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이날 “아이들 것까지 (그냥) 드리겠다고 하면 가족 수만큼 1인 2장씩 구매할 것”이라고 말해 구입 문턱을 일부러 높였음을 인정했다.
이번 대책은 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당초 5일 오전 9시 반 대책을 공개할 예정이었지만 브리핑 10분 전 발표 시점을 오후 3시로 미뤘다. 정부는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출생연도가 홀수면 홀수일에, 짝수면 짝수일에 마스크를 살 수 있는 ‘홀짝제’를 시행하려 했다. 하지만 마스크 대기 행렬을 줄일 수 없다는 판단에 급히 요일제로 방향을 틀었다.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 약국이나 우체국 등 공적 판매처에 연일 긴 줄이 늘어서는 모습이 계속 보도되면서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나온 공급 확대 방안도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마스크에 들어가는 필수 원자재인 MB필터 설비를 각 업체에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마스크 제조업체 관계자는 “부직포 생산 설비를 MB필터용 설비로 바꾸려면 두 달 넘게 걸린다”고 했다. 정부가 생산량의 80%를 일괄 수용하기로 하면서 생산을 중단하는 업체까지 생겼다. 서울 중구에 본사를 둔 이덴트는 “조달청에서 생산원가의 50% 정도만 인정해주겠다고 통보했다.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생산해야 하는 명분도 의욕도 상실한 상태”라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불법 유통 등을 단속하는 데 치중했을 뿐 공급량 확대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시중에선 마스크 품귀 현상이 발생했는데 대통령을 포함한 책임자들은 “물량은 충분하다”는 말만 했다.
마스크 사용 지침이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늘기 전만 해도 보건당국은 마스크를 하루에 한 번씩 바꿔야 하며 KF94 이상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마스크 하나를 갖고 사흘 이상 써도 된다고 하고 면 마스크도 권장한다고 말을 바꿨다. 한 감염내과 교수는 “일회용 마스크는 말 그대로 ‘일회용’인데 이를 재사용하거나 며칠씩 사용하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번 대책이 마스크를 미리 확보해 두자는 가수요를 줄이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대책위원장)는 “1인당 두 장을 살 수 있다면 앞으로 마스크 못 살까 봐 미리 사야겠다는 부담은 덜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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