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워 놓은 마스크 대책이 ‘진짜 약자’는 배려하지 않으니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주부 권모 씨(40)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마스크 대책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2009년 이전 출생자(만 11세 이상)는 직접 약국 등에 가서 마스크를 사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었다. 하지만 권 씨의 딸(14)은 소아암 환자라서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은 처지다. 권 씨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알코올과 휴지로 버튼을 닦은 뒤 누를 정도”라며 “사람이 많이 몰린 곳에 아이가 어떻게 가느냐”고 울먹였다.
9일부터 정부가 내놓은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됐지만, 마스크 공급 사각지대에 놓인 건강 취약 계층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특히 소아암을 앓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정부가 배려 없이 일괄적인 배급제를 적용한 탓에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에 따르면 암 환자 등 기저질환자들은 의료기관을 방문하거나 환기가 잘 안 되는 공간에서 타인과 접촉하는 경우 KF80 이상의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오가는 환자에게 마스크는 필수품이다. 하지만 암 환자와 가족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약국이나 우체국 등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마스크를 사러 가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임남빈 씨(46)도 최근 “아빠, 마스크 구하기 어렵지? 미안해”라는 딸(13)의 말에 억장이 무너졌다. 딸은 지난해 5월부터 뇌암을 앓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인들이 구해준 덴털마스크(치과 의료진이 쓰는 일회용 마스크)로 버티다가, 이젠 그마저도 얼마 남지 않았다. 임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나는 안 써도 된다. 제발 아픈 아이가 맘 편히 마스크를 쓸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울먹였다.
2010년 이후 출생인 환자들도 쉽지만은 않다. 부모가 대신 구매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가족도 있다. 우모 씨(45·여)는 소아암 환자인 딸(6)을 홀로 키운다. 아픈 아이를 집에 혼자 둔 채 마스크를 사러 나갈 수가 없다. 우 씨는 “나는 아이와 24시간 붙어 있는데 혹시나 집 밖에서 감염이 될까 봐 외출하기도 난감하다”고 했다.
소아암 환자의 부모들은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이모 씨(43·여)는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아서 자주 구토를 하기 때문에 마스크가 하루에 최소 2, 3개는 필요하다”며 “공영홈쇼핑에서 마스크를 사려고 하루에 148번 전화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건강 취약 계층들도 정부 정책이 아쉽긴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4번 투석을 받는 만성 신부전증 환자 신모 씨(26·여)는 “투석을 받는 동안 마스크를 꼭 써야 하는데 지금 보유한 수량이 부족해 큰일”이라며 “지난주 읍사무소에 기저질환자를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마스크가 있냐고 물었더니 없다고만 하더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꼭 필요한 이들에게 마스크를 우선 공급할 수 있도록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영호 한양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마스크 5부제는 공평해 보이지만 사실 (건강 취약 계층엔) 공평하지 않은 제도”라며 “기저질환이 있는 소아나 노인 등 고위험군에 마스크를 우선적으로 공급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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