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9일 역대급으로 하락하면서 한국의 정유사와 조선사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가급락으로 정유사는 석유제품 가격 하락을 걱정하고, 조선사는 세계 선주들의 선박 발주 감소를 우려한다.
국제유가는 지난 6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하루만에 10% 폭락했다. 서부텍사스원유(WTI)선물은 10% 떨어져 배럴당 41.28달러를 기록했고, 영국 북해산 브렌트유도 전날보다 9% 넘게 하락해 배럴당 45.7달러에 마감됐다.
이번 유가 급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중국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4월부터 원유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 이유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지난 5일~6일에 열린 OPEC+ 총회에서 러시아의 반대로 추가 감산 합의가 무산된 것도 폭락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정유사 제품가격 하락 걱정…정제마진 개선 긍정효과도 기대
이번 유가 급락은 당분간 세계 원유 수요에서 공급 우위의 시기가 지속될 것을 의미하는 지표로 해석된다.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감소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산유국의 증산 결정이 나왔기 때문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수요가 동반되지 않은 원유 가격 하락은 제품가격 하락도 함께 가져올 수 있어 반갑지 않다.
게다가 석유제품 최종 가격에서 원재료 가격을 뺀 정제마진도 손익분기점인 4달러~5달러에 한참 못미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3월 1주 정제마진은 배럴당 1.4달러로 지난주의 2.3달러보다 39%가량 하락했다. 정제마진이 4달러를 보였던 2월 2주보다는 무려 65% 가량 하락한 가격이다.
그러나 원가가 하락한다는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정유사들에게 유가 하락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승재 DB금융투자 연구원은 “현재 부진한 시황이 지속되고 있는 정유·화학업체에게는 원가 부담 완화 측면에서 단기보다는 중장기 시황 반등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이도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국내 정유사는 유가 하락이 가져오는 단기적인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지만 낮은 원가는 중장기적으로 원가경쟁력 상승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조선사, 해양플랜트 시장 부정적 영향 우려돼
세계 경기가 침체되면 해상 물동량이 줄어 배를 제조하는 조선사들도 일감이 줄어든다. 특히 이번 유가 급락으로 LNG가격까지 하락폭이 커지는 모양새를 보여 LNG운반선 수주로 올해 반등을 노렸던 한국 조선사들도 근심이 커지고 있다.
조선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해양플랜트 시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나온다는 점이다. 통상 해양플랜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60달러 이상일 때 발주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배럴당 40달러대를 보이고 있는 국제 유가가 오래 지속되거나, 더 하락하게 된다면 올해도 조선사들은 해양플랜트 수주에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국제유가 하락은 석유수요 증가에 따른 탱커 발주 증가, 선박용 페인트 등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른 수익성 개선 등의 긍정 효과도 있지만 주식시장에서는 긍정효과보다는 해양플랜트 시장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KB증권에 따르면 올해 수주목표 중 해양플랜트 비중은 현대중공업 18.4%, 삼성중공업이 29.8%다.
이은창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가 급락 폭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조선사들의 해양플랜트 수주 일감에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IMO2020의 영향으로 세계 신조선 발주 감소를 예상했지만 코로나19와 유가급락으로 그 감소폭이 더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그러나 “세계 조선 발주 시장에서 꼭 필요한 선박이면 발주가 되는 만큼 이번 유가 급락이 일시적 쇼크일 경우 발주 시기의 지연 정도의 문제만 나타날 것”이라며 “대형 원유운반선과 LNG 운반선 등은 오일 메이저들의 장기 계획에서 발주되기 때문에 단기 이슈에서는 발주 물량이 당장 없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로이터는 OPEC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오는 18일 공동감산기술위원회(JTC)가 열린다고 보도했다. 이 회의에서는 3월 이후 OPEC의 생산정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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