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처럼 펄펄 끓는 행성… 해가 지면 쇳물 비가 내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지구서 640광년 거리 외계행성 관측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외계행성 WASP-76b의 풍경을 상상해 그렸다. 별을 바라보고 있는 면의 온도가 2400도가 넘어 기체가 된 철이 온도가 낮은 밤 지역에 이동해 비처럼 내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남방천문대 제공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외계행성 WASP-76b의 풍경을 상상해 그렸다. 별을 바라보고 있는 면의 온도가 2400도가 넘어 기체가 된 철이 온도가 낮은 밤 지역에 이동해 비처럼 내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남방천문대 제공
폴란드 출신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1961년 발표한 과학소설 ‘솔라리스’에는 기묘한 행성이 등장한다. 소설 속 먼 미래의 인류가 솔라리스라고 부르는 이 행성은 천문학자들이 흔히 ‘워터월드’라고 부르는 액체로 이뤄진 바다를 품은 행성이다. 이 바다는 마치 지적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 반응하고, 이 사실이 지구에 알려지면서 큰 관심을 모은다. 작품은 마지막까지 이 바다의 정체가 생명체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우주에 전혀 다른 개념의 행성과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인류의 오랜 상상력을 드러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생명을 가진 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상을 넘어서는 기이한 풍경을 보이는 행성이 우주에는 많다. 이달 11일 유럽 과학자들은 먼 우주에서 기상현상이 존재하는 독특한 행성을 발견했다. 유럽남방천문대와 스위스 제네바대는 칠레에 있는 초거대망원경(VLT)를 이용해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640년이나 가야 하는 거리에 있는 WASP-76b라는 행성을 관측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공개했다.

○진짜 ‘철비’가 내리는 행성

이번에 발견한 행성은 질량이 목성의 92%에 달하는 거대한 가스 행성이다. 가스가 중력에 의해 뭉쳐 쫀득쫀득하게 엉켜 있는 형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이 행성에서는 용광로의 쇳물 같은 액체 철이 비처럼 내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행성은 별(항성)에 지나치게 가깝게 붙어 주변을 돌고 있다. 게다가 해바라기처럼 한쪽 면이 계속해서 별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별을 바라보고 있는 쪽은 늘 낮이다. 이 지역의 온도는 2400도가 넘는 것으로 추정됐다. 영원히 해가 들지 않는 반대쪽도 이보다 900도가 낮은 1500도에 이른다. 금성의 지표면 온도가 460도 남짓인데, 이보다도 훨씬 뜨겁다.

1500도는 철을 녹이는 용광로의 온도와 같다. 그래서 이 행성에 있는 철 성분은 모두 녹아 있다. 철은 2400도에서 끓어올라 기체(증기) 상태로 존재한다. 행성 표면에는 높은 온도차 때문에 고기압과 저기압이 형성되고 항상 거센 바람이 분다. 기체 상태인 철은 항상 낮인 지역에서 밤이 계속되는 지역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가 액체가 되어 비처럼 내린다.

과학자들은 지구처럼 날씨가 있고 물과 같은 액체가 존재한다는 점만 확인되면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상상에 자주 빠진다. 두 조건은 생명 현상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행성은 지구로 치면 지옥에 해당하는 극한 조건이라는 점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주생물학 전문가인 이강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보좌관은 “현실적으로 이 온도에서 탄소생명체는 물론이고 복잡한 구조의 물질이 만들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다만 극단적 환경에서 어떤 화학 반응이 벌어지는지 인류가 다 알지는 못하는 만큼 미지의 생명을 상상해 볼 수는 있다”고 말했다.

○바다가 있는 태양계 위성들

WASP-76b 행성 못지않게 기묘한 기상현상을 보이는 천체는 태양계 안에도 있다. 토성의 위성이자 태양계에선 두 번째로 큰 위성인 타이탄이다. 비록 달과 같은 위성이지만 유기물로 이뤄진 두꺼운 대기를 갖고 있다. 대기 아래에는 역시 유기물인 메탄과 에탄으로 된 호수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 메탄은 수시로 증발해 구름이 됐다가 다시 메탄 비로 지상으로 내려온다. 천문학자들은 이 위성이 액체 유기물이 많은 데다 기상현상까지 있어 물 대신 메탄을 이용하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에는 토성의 또 다른 위성 엔켈라두스와 목성의 유로파도 주목받고 있다. 두 위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표면은 얼어 있다. 하지만 지하에는 액체 상태의 물이 많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가운데 유로파의 물은 지구보다 양이 많고 목성의 강한 중력으로 지하에서 밀물과 썰물 현상이 일어나면서 물 내부에서 유기물이 뒤섞여 생체 분자를 만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짐작된다.

엔켈라두스는 물이 지표를 뚫고 나와 높이 수백 km의 거대한 분수를 이루는 풍경이 포착되기도 했다. 심채경 경희대 우주과학과 교수는 “엔켈라두스는 지구의 바다처럼 유기물도 들어 있어 최근 우주생물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과학자들의 호기심을 반영해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은 2010년대 이후 여러 개의 엔켈라두스 탐사 임무를 추진하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솔라리스#외계행성#wasp-76b 행성#태양계#위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