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스페인 코로나19 확산…‘여성의 날’ 집회가 결정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7일 21시 45분


“‘그날’ 스페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될 것이란 우려가 사실상 기정사실화됐다.”(스페인 시민)

17일 스페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가 1만 명에 근접하며 세계 4위로 올라선 것에 대한 한 스페인 시민의 반응이다. 사망자는 342명에 달한다. 이 시민이 말한 ‘그날’은 세계 여성의 날인 8일을 가리킨다.

스페인 주요 언론과 현지인들은 코로나19 창궐의 주원인으로 대규모 집회와 행사를 지목하고 있다. 8일 당시 스페인 내 확진자가 589명에 불과했다. 확산 우려가 서서히 커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지만 이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도심에서는 열린 집회에는 12만 명이 참석했고, 바르셀로나에서도 5만 명이 행사에 참가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48)는 트위터에서 “페미니즘과 함께해야만 여성 폭력을 종식하고 평등을 이룰 수 있다”며 행사 참여를 독려했다. 같은 날 스페인 최대 노조가 남녀의 동등 임금과 차별 폐지를 주장하며 파업을 벌이면서 전국적으로 600만 명이 집회나 행사에 참가했다.

스페인은 유독 행사가 많아 ‘이벤트가 365일 이어지는 나라’로 불린다. 이달 초 각종 봄 축제가 시작됐고, 11일까지 진행된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는 경기당 평균 3만 명의 관중이 몰렸다. 여기에 발열 감지 시스템이나 건강체크 질문서 하나 배치되지 않은 공항 등 보건시스템의 부실이 더해졌다.

결과는 참담하다.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한 이레네 몬테로 양성평등부 장관(32)은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 중이다. 산체스 총리를 포함해 내각의 각료 전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고, 총리 부인인 마리아 페르난데스 여사가 14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강인(19) 선수의 소속 팀인 발렌시아 선수의 35%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스페인 정부는 14일 뒤늦게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생필품과 약품 구매, 출퇴근 목적을 제외하고는 자국민들을 자택에 머물게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대규모 집회를 계속 허용하는 등 대응이 늦은 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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