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한가운데서[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0일 03시 00분


정민지 작가
정민지 작가
“아우슈비츠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다.”
 
―임레 케르테스 ‘운명’ 중
 
열네 살 유대인 소년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갔다. 그곳은 질병, 굶주림, 총살이 일상인 ‘인간 도살장’이었다. 포로 생활은 1년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소년은 늙고 병든 노인의 몰골로 변해 있었다. 아버지는 죽고 새어머니는 사라졌다. 혼자 남은 소년에게 이웃은 말했다. 그간의 힘든 시간들은 빨리 잊으라고. 그러자 소년은 왜 그래야 하느냐며, 시체들이 나뒹구는 그 끔찍한 곳에서도 행복은 있었다고 고백한다. 소설을 읽다 멈추고 목구멍으로 침을 꼴딱 삼켰다. 절망, 지옥, 죽음 대신에 행복이란 단어가 갑자기 나왔기 때문이다. 당황한 독자는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결말을 비난하며 외면했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며 재평가가 이뤄지기 전까지 말이다.

“모든 독서는 오독”이란 말에 힘을 얻어 생각해 보면, 나는 소년이 어느 찰나의 순간에 행복에 가까운 무언가를 진짜로 느꼈을 것만 같다. 기어이 희망을 찾아내야 그 비인간적인 공간에서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죽음의 공포에서 겨우 한 뼘 뒤로 물러선 그 순간을 행복이었다 말하는 것은 가장 적나라한 고발이다. 나는 이 어린 소년에게서 자신의 삶에 성실하려는 태도를 배운다. 남이 규정 내린 대로 쉽게 뭉뚱그려버리지 않고, 자신의 시간들을 더 촘촘히 대하는 자세 말이다. 그러다 보면 불행의 한복판에서도 의미 있는 시간들을 마주하는 기적이 나타난다.

올해는 유독 힘든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내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생은 비극이지만, 그 비극에도 크나큰 슬픔에 가려진 사소한 기쁨들이 모래처럼 흩뿌려져 있다. 존재감 없는 그 작은 모래알이 햇빛을 받으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이는지.
 
정민지 작가
#임레 케르테스#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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