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관념 산수만 그렸다는 통념이 있어요. ‘정말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시작해 만난 서울 그림을 모았습니다.”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열화당), ‘이중섭 평전’(돌베개)의 저자인 미술사학자 최열(64)의 새 책이 출간됐다. 겸재 정선은 물론 북산 김수철 등 화가 41명의 작품 125점을 수록했다. 조선시대 서울 그림을 모은 첫 책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1117’ 사옥에서 2일 만난 최 씨는 책의 시작을 2002년 하나은행 사보라고 설명했다.
“정수영의 ‘백사 야유도’를 출발로 실경 회화에 관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림 찾기에 어려움은 있었지만 하나를 찾으면 다음이 선물처럼 등장해 2006년에는 삼성문화재단에서 발간한 ‘문화와 나’, 2009년 ‘서울아트가이드’로 이어졌죠.”
연재는 서울뿐 아니라 관동팔경, 단양팔경 등 조선 전역을 대상으로 했다. 그러다 ‘이중섭 평전’으로 인연을 맺은 이현화 혜화1117 대표의 제안으로 서울에 관한 글을 모으기로 했다.
연재 과정에서 최 씨는 그림 속 장소를 답사해 보고 숨은 작품을 찾으려고 발품을 팔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묻자 그는 심사정의 그림 속 실경을 추적한 일을 꼽았다.
“심사정은 실경을 그린 적이 없다고만 이야기 됐죠. 그런데 ‘경구팔경첩’은 서울을 그린 화첩임에도 구체적 장소에 대한 연구가 없어 그것을 직접 찾는 과정이 즐거웠습니다.”
그는 그림은 기본적으로 실제 경치를 대상으로 하며 특수한 경우가 관념 산수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굳이 ‘실경’이라는 말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이나 권신응의 북악십경처럼 한양의 아름다움을 기록하는 그림들도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관념 산수만을 이야기하며 ‘실경’을 특별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죠.”
책은 도봉으로 시작해 세검정, 인왕산과 광화문을 지나 남산, 광나루를 거쳐 행주산성으로 마무리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산이나 물길을 기준으로 과거와 현재의 풍경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작자 미상의 ‘근정전 정시도’에는 임진왜란 후 오랜 세월 폐허로 방치돼 불에 탄 궁궐 건물 대신 천막이 설치된 풍경도 드러난다.
겸재뿐 아니라 다양한 화가의 그림이 수록된 것도 특징이다. 그는 “겸재의 그림 대부분은 주문에 의한 것이었다”며 “겸재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화원 등 다양한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림에 관한 전문적 지식을 파고들기보다 그림 속 서울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를 적절히 버무려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끈다. 그는 요즘처럼 야외 활동이 어려운 때 책으로나마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는 옛 그림을 보며 시간 여행을 떠나곤 했죠. 책을 읽는 모든 이와 함께 아름다웠던 한양의 감동을 누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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