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방역, 글로벌 호평 잇달아… 서구 언론 따라 日 언론도 칭찬 일색
日은 서양 언론-평가에 민감한 나라
한국 입장이 ‘세계의 지지’ 받는다면 일본 여론-정부도 태도 바꿀 수밖에
2018년 큰 인기를 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마지막 장면에 한 장의 의병 사진이 등장한다. 영국 데일리메일 특파원이었던 프레더릭 매켄지 기자가 1907년에 찍은 사진이다. 그 드라마가 방영되기 몇 해 전, 나는 정말 우연한 기회에 그가 조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며 데일리메일에 의병 사진을 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날 와세다대에서 입학시험을 감독 중이었는데, 일본사 문제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관한 지문이 있는 것을 보고, 시험이 끝나자마자 그 지문의 출처가 된 서적을 구입해 읽었다. 매켄지 기자가 쓴 ‘자유를 위한 코리아의 투쟁(Korea‘s Fight for Freedom)’이란 책이었는데, 책의 3장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기술돼 있었다.
최근 한국의 방역 시스템에 대한 일본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잊고 있었던 그 책이 떠올랐다. 왕비의 시해자들을 법정에 세우기로 한 일본의 결정은 조선인이 아니라 ‘서양인’의 증언에 의해 범죄가 서구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총리였던 이토 히로부미는 혐의가 있는 일본인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인이 경멸의 눈으로 일본을 볼 것이다”라는 이유를 댔다. 재판은 결국 쇼에 불과했지만 ‘서양인’의 증언이 없었다면 그 쇼조차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일본의 극우가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은 한국인의 증언은 폄훼하고 무시하다가 서구가 움직이면 그제야 뒤로 물러선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으로 언론에 나와 참혹했던 과거를 증언했다. 1993년 ‘고노 담화’가 발표됐고,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 여성법정에서는 일본 정부에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그즈음부터 일본의 우익은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폄훼하기 시작했다. 2001년 NHK는 국제 여성법정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에 내보냈는데, 여성법정의 주최 측으로부터 애초에 합의된 내용과 다르다는 거센 항의를 받았다. 2005년 아사히신문은 당시 NHK가 방송 내용을 수정한 것은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의 압력 때문이었다고 폭로했다. 2006년 총리에 취임한 아베는 위안부 제도의 강제성을 부인하는 등 기세가 등등했지만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지자 결국 사죄를 표명했다. 전 세계가 일본 극우와는 전혀 다른 상식을 갖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최근 불거진 징용공 문제에 대해 일본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는 것은 위안부와 달리 징용공 문제에 있어서는 북미와 유럽의 여론이 잠잠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방역 시스템에 관한 일본 언론의 보도가 언제부터인가 긍정 일변도로 변했다. 일본 정부의 방역 관리에 대한 불만에도 이유가 있겠지만 서구 언론에서 칭찬이 잇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난 수년간 한일관계가 악화에 악화를 거듭했다. 지금과 같은 대립은 서로에게 손해만 끼칠 뿐이지만 아베가 물러나지 않는 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코로나 사태에서 보인 일본 언론의 호의적 보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전 세계의 여론은 중국이나 일본의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방식이 성공하기를 바란다. 재난에 대처하는 “민주적이면서 투명한 사회”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여론은 서구의 여론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이 견지하는 입장이 문명사회의 상식에 부합한다면 결국 일본 정부도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만의 논리를 자가 충전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의 의견을 듣는 데도 힘써야 한다. 올림픽이 연기된 것으로 일본을 조롱하는 일도 바람직하지 않다. 인명과 관련된 재난을 웃음거리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것 역시 피해야 한다. 매켄지 기자의 책에서 입시문제 지문을 뽑은 것은 일본의 대학이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해서 전 세계에는 문명사회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혜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코로나 사태에서처럼 한국의 입장이 그들의 지지를 받게 될 때, 한일관계도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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