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가을이 이어지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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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메이플 로드의 도시들

퀘벡 구시가지에서는 아기자기한 상점 구경이 쏠쏠하다. 작은 그릇 가게부터 옷 가게, 크리스마스 용품 가게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퀘벡 구시가지에서는 아기자기한 상점 구경이 쏠쏠하다. 작은 그릇 가게부터 옷 가게, 크리스마스 용품 가게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마음 놓고 떠나기 힘든 요즘이다. 가고 싶은 그곳으로 마음만이라도 떠나고 싶다. 지금 당장은 어렵지만 올 여름이나 가을 가보고 싶은 곳을 미리 찾아보고 계획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가을 단풍으로 붉게 물든 캐나다 메이플 로드를 찾았다. 올가을 800km에 이르는 단풍 사이를 달리며 힘들었던 기억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으면….》

퀘벡은 1608년 사뮈엘 드 샹플랭이 세운 캐나다 최초의 유럽식 도시다. 캐나다 역사의 시작인 퀘벡을 보지 않고 캐나다를 논하긴 어렵다. 국기에 단풍잎을 그려 넣은 나라, ‘단풍국’ 캐나다를 방문하기엔 역시 가을이 적기다. 퀘벡시를 시작으로 몬트리올과 오타와를 거쳐 나이아가라폭포까지 이르는 800km 메이플 로드에서 가을 캐나다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캐나다의 단풍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메이플 로드. 퀘벡시부터 나이아가라폭포까지 800km에 이른다.
캐나다의 단풍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메이플 로드. 퀘벡시부터 나이아가라폭포까지 800km에 이른다.
캐나다 역사를 품은 퀘벡

캐나다 퀘벡주의 주도 퀘벡시는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북미의 유일한 성곽도시다. 400여 년 전 프랑스인이 건설한 이 도시는 100년 넘게 영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를 쓰고 프랑스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퀘벡시의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다. 한국으로 치면 경주와 같은 곳. 퀘벡 사람들은 역사를 품고 산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퀘벡 구시가지에 들어서면 건물 하나가 어디서든 눈에 띈다. 퀘벡시의 상징인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이다. 적색 벽돌에 뾰족뾰족한 청동 지붕으로 멋을 낸 외관. 유럽의 고대 성처럼 생긴 이곳은 늘 관광객들로 붐비는 퀘벡시의 최고 인기 호텔이다.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관광객은 시간여행자가 된다. 투숙하지 않고 호텔 내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가는 여행자도 많다. 금색으로 꾸민 로비 인테리어는 고풍스러움 그 자체다.

올해 완공 126주년을 맞은 샤토 프롱트나크는 호텔이라기보다 박물관에 가깝다. 이 호텔에서 드라마 주인공 공유만 생각하기엔 시간이 아깝다. 호텔 곳곳에 아로새겨진 역사를 살펴보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세인트로렌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내 회의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캐나다 총리 윌리엄 라이언 매켄지 킹,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만났던 곳. 이들은 이곳에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결정했다.

호텔 뒷문으로 나오면 한적한 공원이 나타난다. 낙엽 양탄자가 깔린 공원을 통과해 오르막길을 조금 지나면 푸른 언덕이 나온다. 한국인들에겐 드라마 ‘도깨비’에서 등장한 언덕으로 더 유명한 아브라함 평원이다.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과 함께 퀘벡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건물들, 세인트로렌스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퀘벡시에 하루를 머물더라도 아브라함 평원엔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방문할 정도로 풍광이 좋다. 이 나지막한 언덕에서 퀘벡의 낮과 밤이 서로 다른 매력을 뽐낸다.

호텔 주변을 벗어나 구시가지 곳곳을 걸어보자. 유럽의 작은 마을에 온 듯하다. 반나절이면 다 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지만 수백 년 된 식당 건물, 아기자기한 상점들을 보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프티 샹플랭 거리는 1680년 보행자 전용 도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천천히 걸으며 퀘벡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리도 운하. 운하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오타와에 온 것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의 리도 운하. 운하 주변을 산책하다 보면 오타와에 온 것이 절대 후회되지 않는다.
단풍 구경만으로도 즐거운 메이플 로드

캐나다 전역은 9월 중순부터 10월까지 오색 빛으로 물든다. 메이플 로드를 따라 하루 4∼5시간의 차량 이동은 기본이지만 한국의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의 시간과는 차원이 다르다. 창밖의 단풍을 구경하다 보면 조는 시간도 아깝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넋 놓고 창밖을 보다 보면 어느새 몬트리올에 도착한다.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1976년 올림픽이 열린 도시. 공유 자전거를 타고 몬트리올 도심 곳곳을 누비면 미소가 절로 나온다. 수백 년 된 건물들 사이에 보물처럼 숨겨진 벽화를 즐기는 것도 몬트리올 관광의 묘미다. 몬트리올은 벽화의 도시다. 거의 모든 건물 벽면에 그래피티가 있을 정도다. 또 몬트리올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몽 루아얄(Mont Royal) 전망대. 커다란 카메라를 가져와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띌 정도로 단풍 속 몬트리올 도심이 아름답게 한눈에 담기는 곳이다.

메이플 로드를 따라 퀘벡주를 벗어나면 캐나다 수도인 오타와를 만나게 된다. 오타와에서 리도 운하 주변 산책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리도 운하를 따라 걸으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단풍 데칼코마니에 감탄사가 끊이질 않는다. 국회의사당과 박물관, 갤러리 등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단풍 치마를 입고 리도 운하를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듯하다.

헬기를 타고 보는 나이아가라폭포. 한눈에 담아지지 않는 거대한 폭포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헬기를 타고 보는 나이아가라폭포. 한눈에 담아지지 않는 거대한 폭포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메이플 로드의 종착지 나이아가라폭포

메이플 로드의 종착지 나이아가라에 도착하는 순간 속성으로 몬트리올과 오타와를 훑고 지나온 아쉬움은 사라진다. 높이 55m, 폭 671m에 달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거대한 자연 앞에 할 말을 잃고 모두 ‘와’ 하고 탄성만 내지른다.

캐나다는 대자연을 그저 바라만 보라 하지 않는다.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고, 직접 들어가서도 보고, 날아가면서도 본다. 나이아가라 투어의 기본 중 기본은 크루즈 투어다. 나이아가라를 눈앞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이다. 성인 기준 30.5캐나다달러(약 2만7000원)다. 날씨만 문제없다면 15∼30분 간격으로 배가 출발한다. 배가 폭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마어마한 물보라가 온몸을 감싼다. 나이아가라폭포의 위엄에 완전히 압도된다.

‘저니 비하인드 더 폴스’는 나이아가라폭포 물줄기의 측면과 뒷면을 보는 투어다. 130여 년 전 지어진 터널을 1시간 정도 굽이굽이 따라 걸으면 나이아가라폭포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 천둥소리 같은 폭포의 거대한 울림이 청각은 물론이고 진동으로 온몸에 느껴진다. 우비를 얼굴까지 단단히 여미지 않으면 세수를 한 듯 얼굴이 다 젖어 나이아가라의 물줄기를 맛볼 수도 있다.

헬기를 타고 나이아가라 폭포 상공을 10여 분 동안 구경할 수 있는 헬기 투어도 있다. 오색 빛으로 물든 숲이 나이아가라의 물줄기를 감싼 그 모습은 헬기 투어로만 즐길 수 있는 명장면이다. 웅장한 나이아가라 폭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도 하늘 위뿐 아닐까. 이 각도, 저 각도로 나이아가라를 즐기다 보면 10여 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나이아가라를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길이 670m의 집라인을 타고 폭포를 가로지를 수도 있다. ‘월풀 제트보트’로는 나이아가라 폭포 하류의 급류 구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우비를 서너 개 껴입고 눈만 겨우 보일 정도로 완전 무장을 해도 제트보트가 잠수함이 된 듯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 때문에 여벌 옷은 필수다.

퀘벡·몬트리올·오타와=김예지 기자 yeji@donga.com

캐나다 관광청(유운상 작가) 사진 제공
#캐나다#퀘백#메이플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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