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영화 산업의 밸류체인(가치사슬)이 무너지고 있다. 투자-제작-배급-극장상영-부가시장(VOD 등)으로 이어지던 영화의 생산·유통 경로가 극장 관객 수 급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의 활성화로 격변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영화 ‘사냥의 시간’이 극장 개봉 계획을 취소하고 이달 10일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9일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 ‘공수도’는 인터넷TV(IPTV)를 통해 입소문이 나자 한국 영화가 극장으로 ‘역주행’한 첫 사례다.
드림웍스의 애니메이션 ‘트롤: 월드 투어’는 북미에서는 이달 10일, 국내에서는 29일 극장과 VOD에서 동시에 공개된다. 디즈니는 올여름쯤 디즈니의 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던 ‘겨울왕국2’의 온라인 서비스를 지난달 중순부터 공개했다. 극장뿐 아니라 디즈니랜드 등 코로나19로 오프라인 사업이 입은 타격을 만회하기 위해서다.
이런 유통 방식의 다변화는 코로나19 국면에서 극장 개봉만으로는 수익을 보장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다중이용시설인 극장의 일평균 관객 수는 이달 들어 3만 명대로 추락했고 이달 첫 주 주말(4, 5일) 관객은 8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반면 집에서 OTT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늘어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 ‘왓챠’ 이용자들의 전체 시청 시간은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타난 1월 셋째 주 주말과 비교하면 3월 말 기준 51.3%가 증가했다. 제작비 회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큰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들은 개봉을 잇달아 미루고 있다. 사전 제작이 활성화된 드라마의 경우 최대 6개월 전부터 촬영에 돌입해 올해 라인업에 큰 변동은 없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대비하는 중이다.
극장 매출은 한국 영화 산업 전체 매출의 약 80%를 차지한다. 관객이 극장에서 티켓값을 지불하면 영화발전기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극장과 배급사, 투자사와 제작사 등이 나눠 갖는다. 극장 관객이 줄어들면서 영화 산업에 속한 기업의 자금 흐름이 연속적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최정화 대표는 “촬영을 멈추면 하루 수천만 원씩 손해를 본다. 그렇다고 아예 작품 제작을 중단해 버리면 계약한 스태프들이 피해를 입고 제작사는 손해를 떠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매달 일정한 매출이 발생하는 극장의 손해는 눈에 보이지만 영화 작품 단위로 움직이는 제작사 수입사 마케팅사 등의 손해는 일반 기업처럼 계량화할 수도 없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극장이 아예 문을 닫은 미국도 상황이 비슷하다. IMAX와 시네마크 등 미국 영화 관련주들의 주가는 연초 대비 50% 넘게 폭락했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은 지난달 워싱턴포스트 기고에서 1924년 설립 이래 처음으로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 미주리의 한 극장 사례를 들며 극장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위협이 영화의 유통 형태에 변화를 줄 순 있어도 ‘극장’이라는 공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놀런 감독은 “결속의 시간이 더 중요해지고, 이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디어 분석 회사 컴스코어의 폴 더가라비디언 수석 애널리스트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면 세간의 이목을 끄는 대작 영화들을 극장에서 보려는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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