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배부른 걸 어떻게 알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3일 03시 00분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지만, 생물학자에게는 다르다. 어떻게 뇌가 포만감을 느끼고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150년 전부터 생리학자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음식이 소화기를 팽창시킬 때 느껴지는 물리적 자극이 포만감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를 응용해 위에 풍선을 넣고 부풀려 식욕을 억제하는 이른바 ‘위 풍선술’이라는 시술법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정확한 기전을 밝혀내지는 못했다. 어떤 신경세포가 어떤 원리로 이 과정을 수행하는지는 그동안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국내 연구자들이 물리적 자극을 통한 포만감을 느끼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신경세포를 처음 발견했다. 서울대 화학부 김성연 교수와 김동윤, 허규량, 김민유 연구원은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소화기 내부의 물리적 자극을 담당하는 뇌 속 ‘관문’ 역할의 신경세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8일 공개했다.

연구팀은 2017년, 따뜻한 온도 감각을 전달하는 뇌 신경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쥐를 이용해 후뇌 ‘부완핵’의 신경세포를 연구했다. 부완핵은 목 부위에 위치한 뇌 부위로 다양한 감각 신호가 거쳐 간다. 그런데 우연히 이 영역을 자극한 쥐들이 물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물 대신 분유나 먹이를 줘도 결과는 똑같았다. 연구팀은 이곳의 신경세포가 배고픔이나 갈증 해소에 관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 신경세포가 어떤 상황에서 활성화되는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을 모니터링하는 뇌 신경세포를 발견한 주요 연구자들이 실험쥐를 사이에 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교신저자인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제1저자인 허규량, 김민유, 김동윤 연구원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소화기의 물리적 자극을 모니터링하는 뇌 신경세포를 발견한 주요 연구자들이 실험쥐를 사이에 두고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교신저자인 김성연 서울대 화학부 교수와 제1저자인 허규량, 김민유, 김동윤 연구원이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연구 결과 실제로 섭취하는 음식이나 음료의 종류나 성분, 온도와 관련 없이 ‘무엇인가 섭취한다’는 사실만으로 부완핵의 특정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쥐는 포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제로 막대 모양의 탐침을 이용해 혀나 식도, 위 등을 자극해도, ‘위 풍선술’을 이용해 위장을 부풀려도 이 신경세포의 활성이 높아졌다. 연구팀은 이 사실을 신경세포의 전기 활성을 빛의 세기로 변환시켜 측정하는 기술과 고해상도 현미경을 이용해 세포 하나하나를 측정해 밝혔다.

또 신경세포를 빛으로 자극해 활성화시키는 방법으로 식욕을 감소시키거나, 반대로 이 세포의 활성을 억제해 병적인 과식이나 과음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부완핵의 신경세포가 포만감을 일으키는 물리적 자극을 모니터링할 뿐만 아니라, 이 신경세포가 물리적 자극을 포만감으로 변환한다는 사실도 확인한 것이다.

김 교수는 “후뇌와 말단 신경은 생존과 관련된 기능을 담당하는 원시적 뇌 영역이라고만 알려졌지만 이 기본적인 신경망이 섭식과 관련된 반응을 담당하는 구체적 과정은 이제야 밝혀지기 시작했다”이라고 연구 성과를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후속 연구를 통해 “소화기에서 이 신호를 받아들이는 신경이 무엇인지, 이 신호가 어느 경로로 부완핵에 가는지, 부완핵에서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인 시상하부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배고픔 등 욕구와는 어떻게 경쟁하는지 등을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가 쌓이면 섭식 행동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와 유전자를 발굴해 비만과 당뇨 등 대사 질환과 섭식 질환을 치료할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뇌#신경세포#서울대 화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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