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융의 중심부지만 먹거리 측면에서는 딱 섬의 이미지 그대로인 듯싶습니다. 30여 년 전 이 지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해 봐도 크게 달라진 점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화가 적은 곳이지요. 음식의 종류도 그렇고, 그 질과 완성도에서도 외부에 투사되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식사시간에 맞춰 직장인이 무리지어 몰려드는 지역적 특성에 영향을 받은 현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황량한 지역에서 항상 믿고 찾아가는 맛집이 ‘선주후면 어만두’입니다. 이 집은 2014년 문을 연 개성·개풍(開豊)식 만두 전문점입니다. 요즘엔 인근 회사원들의 입맛에 맞춰 냉면과 온반 등으로 메뉴가 확장되었습니다.
이곳 음식의 특징은 간이 세지 않아 슴슴하고(심심하고) 깔끔합니다. 좀처럼 질리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맛으로, 음식에 들어간 고기의 종류와 양이 포인트입니다. 우선 개풍만두에 사용하는 돼지고기는 기름기 없는 안심만을 소량 사용합니다. 고기가 많이 들어가지 않으니 후추 같은 자극적인 향신료도 절제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는 거지요. 여기에 숙주 부추 배추 대파 두부 그리고 약간의 생강과 마늘을 섞습니다. 이 절묘한 밸런스가 만두 맛의 비밀입니다.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재료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힘이 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믹서 같은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일일이 다져서 준비합니다. 뭉그러지지 않은 재료들의 식감은 어만두와 편수에서 돋보입니다.
이 집의 이름이 돼버린 어만두는 당황스럽게도 메뉴에 없습니다.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이라 꼭 하루 전에 예약을 해야만 드실 수 있습니다. 만두피로 무려 민어를 사용합니다. 얇게 포를 떠서 목이버섯 석이버섯 애호박 홍고추 청고추 그리고 쇠고기 업진살을 약간 넣고 살짝 양념을 하여 말아줍니다. 차가운 육수와 함께 내는 사각의 편수는 여러 음식 사이에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어울리는 국면전환용 소르베(셔벗)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면 민어전이나 어만두를 먹고 나서 시원한 편수로 입을 가신 후 따끈한 어복쟁반이나 만두전골 평양온반으로 마무리하는 거지요. 어복쟁반을 뒤덮은 고기의 양은 반전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해줍니다.
민어전 문어숙회 같이 메뉴에 없어도 미리 예약하면 드실 수 있는 음식이 꽤 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단골들은 아예 코스로 미리 부탁해 와인과 함께 즐기기도 합니다. 주인이 와인에 내공이 깊어 한식집임에도 200여 종의 와인이 갖춰져 있는 게 또 다른 장점입니다. 추가 비용 없이 와인을 반입할 수도 있지만 이곳의 정갈한 음식에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 받아 즐기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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