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車 두고 간 대리기사 탓에 3m 음주운전… 법원 “무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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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교통 방해-사고 피하려 한듯… 긴급피난 조치 해당 처벌 못해”

자신과 말다툼을 벌이던 대리운전 기사가 운행 도중 차로에 정차한 뒤 그대로 가버리자 교통 흐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음주 상태로 운전대를 잡았던 30대 남성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류일건 판사는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A 씨 (31)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5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9일 밤 A 씨는 술을 마신 뒤 귀가하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차량이 서울 서초구의 한 도로를 달리던 중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놓고 A 씨와 대리기사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대리기사는 편도 1차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운전석에서 내린 뒤 가버렸다. A 씨는 다른 대리기사를 호출하려 했지만 뒤따르던 차들이 자신의 차에 막혀 움직이지 못하자 직접 운전대를 잡고 3m가량을 몰아 차량을 도로 가장자리로 옮겼다. 이를 몰래 지켜보고 있던 대리운전 기사가 경찰에 신고해 A 씨는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당시 A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097%였다. A 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음주운전은 현행법상의 ‘긴급피난’ 조치에 해당돼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형법 제22조는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정해 놓았다.

재판부도 A 씨의 운전은 긴급피난을 위한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류 판사는 “A 씨의 운전은 교통 방해와 사고 위험 등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로 판단되고 더 이상 차를 운전할 의사는 없던 것으로 보인다”며 “A 씨의 (음주운전) 행위로 확보되는 법익이 침해되는 이익보다 컸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
#대리운전 기사#긴급피난 조치#음주운전#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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