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동아일보의 통일부 출입기자로 일하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 건강 이상설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당해본 기억이 다시 떠오릅니다. 김 위원장은 직전까지 평양과 북한 전국을 현지지도하며 활발한 외부 활동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그 해 8월 중순 이후 외부활동을 하지 않자 마치 21일 현재처럼 다양한 추측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의 당국자들은 비교적 일찍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 징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확인됐지만 프랑스의 뇌혈관계 전문의가 베이징을 통해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했고, 그가 찍어 나온 김 위원장의 뇌사진도 확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내 극소수 당국자만 이 사실을 공유했지만 당국자들은 이런 저런 방법으로 기자들에게 뭔가 벌어지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한 당국자는 기자들에게 가정하듯 “이럴 때 김정일 뇌사진이라도 입수하면 참 좋을텐데…”라고 사실상 정보노출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자들은 이를 확인할 수 없었고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인 9·9절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그의 건강 이상설을 기사화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 당국도 ‘뇌혈관계 질환’ 정도로 확인을 해주었습니다. 8월에 스트로크가 있었고 프랑스 의사 주도의 수술을 받았지만 왼쪽 손과 다리에 마비 증상이 있는 것으로 나중에 확인되었습니다. 북한 당국도 김 위원장이 10월 수술 후 처음으로 군부대의 축구경기장에 나타나 관람하는 사진을 보도하는 것으로 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당시와 비교할 때 20일 밤 데일리NK와 21일 오전 미국 CNN의 보도로 확산된 ‘김정은의 수술 후 중태설’은 사실과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청와대가 오전부터 사실을 부인하다가 오후에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확인한 것이 2008년과 크게 다른 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북 정보기능이 크게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동향을 휴민트(대인정보)와 감청 등으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것은 역시 대한민국 정부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4월 15일 태양절에 김정은이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가벼운 스텐트 시술이나 다리 골격 수술 등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곧 회복해 지도력에 지장이 올만한 신체적 정신적 문제는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김정은의 건강 문제는 언제라도 북한 체제의 변동을 초래할 수 있는 변수입니다. 심혈관계 질환 등 가족력이 있는데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일부러 살을 찌웠고, 정치적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가운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처형하고 암살한 정치적 만행의 기억,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이 깨지고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가 풀리지 않는 외부 환경에서 내부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은 현재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더 높이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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