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처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윤광출 씨(87·대구)는 너무 억울했다고 한다. 며칠 전부터 감기 증상이 있었지만 코로나19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종종 반찬을 갖다준 큰딸(59)도 함께 확진 판정을 받았다.
○ “의료진은 날개 없는 천사”
아흔을 바라보는 고령에 심혈관 질환까지 있는 윤 씨는 ‘고위험군’ 환자였다. 딸과 함께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입원한 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폐렴이 진행됐다. 혈중 산소포화도가 한때 50%대로 떨어졌다. 대구에 환자가 폭증하던 시기라 중증환자 병상도 구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가족에게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힘들어도 이겨 내겠다고 다짐하던 윤 씨도 큰딸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했다. 휴대전화로 다른 자녀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가족 모두 오열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의료진을 통해 전북대병원의 빈 병상을 찾아낸 것. 윤 씨는 손수 짐을 챙기며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전북대병원 의료진은 지난달 6일 병원에 도착한 윤 씨를 상대로 집중 치료에 들어갔다. 2주간 무의식 상태에서 기계로 인공호흡을 하는 고난도 과정이었다. 같은 달 20일 윤 씨가 무의식 상태에서 깨어나 큰 소리를 지르자 의료진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당시 윤 씨의 치료를 담당했던 한 의료진은 “이런 일이 거의 없는데 기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나날이 좋아진 윤 씨는 이달 3일 퇴원했다.
윤 씨 주치의였던 이흥범 전북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는 2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나이도 있고 심장도 원래 안 좋은 분인데 치료를 잘 버텨주셔서 놀라웠다”며 “의식 회복 후에도 의료진의 치료를 잘 따라주셨다”고 말했다. 윤 씨는 “나를 정성껏 돌봐준 의료진 덕분에 나을 수 있었다”며 “그분들은 ‘날개 없는 천사’다”라고 가족에게 말했다.
재양성 판정을 받고 다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윤 씨는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도 없고 폐렴도 경미한 수준이다. 윤 씨는 다시 입원하러 집을 떠나며 자녀들에게 “병원 생활 잘하고 올게. 너희도 몸 잘 챙기고 있어라”고 당부했을 만큼 꿋꿋했다. 윤 씨의 큰딸은 “자신을 보고 많은 사람이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게 아버지의 생각이다”고 전했다.
○ “조금만 더 힘내 기적을 완성하자”
“자기 몸도 아픈데 아버지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큰딸 모습이 생각납니다.”
대구동산병원의 이지연 교수(감염관리실장)는 윤 씨 부녀의 모습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이 교수가 확진자 치료 총괄을 맡고 있는 대구동산병원은 2월 21일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지정됐다. 지금까지 돌봐온 환자만 윤 씨 부녀를 포함해 800여 명에 이른다.
이 교수는 “그동안 어떻게 그 힘든 날을 버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금은 대구경북 지역 신규 확진자가 거의 없지만 3월까지만 해도 전쟁 같았다. 신규 환자가 하루에만 80여 명 입원할 때도 있었다. 새벽에도 응급환자가 발생해 밤낮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전담병원 운영에 익숙지 않은 부분이 많아 진료 틈틈이 수시로 회의도 했다. 이 교수는 “그때 항상 긴장 상태에 있던 습관 때문에 요즘은 나도 모르게 평소에도 항상 긴장해 있다”고 말했다.
신종 감염병이라 명확한 치료 방법을 잘 몰라서 환자들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것도 스트레스였다. 코로나19에 취약한 고령 중환자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는 “일반 환자면 임종 며칠 전부터 가족들이 찾아와 이별을 준비할 텐데 코로나19 환자는 그게 불가능하다”며 “그런 환자들은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연결해 주는데 가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같이 눈물도 많이 흘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중국 우한이나 환자가 많이 발생해 봉쇄된 지역과 비교하면 대구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장의 의료진으로서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국민들에게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이라며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기적을 함께 완성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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