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육아로 손주 키우던 조부모들 ‘면접교섭권’ 요구 목소리 커져
현행 민법선 제한된 경우만 허용… 별도 소송 내 법적권한 갖기도
“아들이 며느리와 이혼해도 다섯 살 난 손자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60대 여성 A 씨는 최근 아들의 이혼을 상담하고 있는 변호사에게 찾아가 이같이 요청했다. 아들 부부가 맞벌이인 탓에 주중에 아들네 집에서 먹고 자며 손자를 키워온 A 씨는 손자 양육권을 며느리가 갖더라도 주말엔 아들 없이 혼자서 손자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A 씨는 “아들만큼 애지중지하며 키운 손자다. 해외 출장이 잦은 아들이 바빠서 못 가면 내가 대신 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맞벌이 부부 증가로 조부모가 손주를 직접 키우는 황혼육아가 흔해지면서 ‘조부모 면접교섭권’을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아들, 딸이 이혼한 뒤 사위나 며느리가 손주를 키우더라도 손주를 만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최유나 이혼 전문 변호사는 “조부모들이 육아하는 경우가 많아지다 보니 이혼 소송에서 쟁점으로 다뤄지거나 협의 이혼 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면접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사례가 많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면접교섭권은 이혼한 부모와 자녀가 서로 만나거나 전화통화 등을 할 수 있는 권리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허용된다.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부터 부모의 의사뿐 아니라 자녀의 의사도 반영해 면접교섭권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면접교섭권 범위를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2016년 12월 ‘예외적 상황’에 한해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민법 개정이 이뤄졌다. 현행 민법 제837조 2의 2항은 ‘부모 한쪽이 사망했거나 질병, 외국 거주, 그 밖에 불가피한 사정’에 한해 조부모가 손주와 면접교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황혼육아가 늘면서 조부모들이 폭넓게 면접교섭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조부모 면접교섭권을 허용한 민법의 ‘불가피한 사정’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이혼 절차를 밟다 서로 다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을 허용할지는 부부가 이혼조건을 합의하는 ‘협의이혼’ 때 대부분 논의된다. 하지만 이혼 절차에서 조부모의 면접교섭권이 화두가 되면서 소송에서 별도로 다투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B 씨는 2012년 자신의 딸이 손자를 낳다 사망하자 사위와 함께 거주하면서 손자를 돌봤다. 재혼하기로 마음먹은 사위가 손자를 데리고 따로 살면서 손자를 양육하자 “손자를 만나게 해달라”며 면접교섭 허가 청구 소송을 냈다. 1, 2심은 모두 B 씨의 면접교섭권을 허용하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조부모와 손자녀 사이에는 자연적 혈연관계에 기초한 끈끈한 애정관계가 존재하고 있다”며 “애착관계가 있었던 조부모로부터 받는 무제한적인 사랑과 관심은 손자녀의 건강한 성장과 정서적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부모 면접교섭권이 예외적으로나마 민법에 명시된 지 4년이 채 되지 않아 아직 판례는 많지 않다. 부부의 맞벌이가 일찍부터 자리 잡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에선 조부모 면접교섭권을 폭넓게 인정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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