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기분과 같고 기후는 성격과 같다는 말이 있다. 매일의 날씨가 쌓이면 기후가 되고 일상의 기분이 몸에 배면 성격이 된다. 날씨와 기분은 수시로 변하지만 성격과 기후는 잘 바뀌지 않는다. 마지막 빙하기가 물러가고 1만 년 이상 온난한 기후가 지속되면서 지구에 수많은 생명체가 번성해 왔다. 인간이 살기에 알맞은 기후가 유지되는 것은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온실효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기가 없다면 지구 평균기온은 지금보다 33도 낮아져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된다. 그래서 어떤 대기환경과학 교과서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대기는 파괴되기 쉬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섬세한 생명 유지의 공기담요이다.”
산업화 이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을 유지시켜온 ‘공기담요’는 온실효과를 높여 기온을 빠르게 상승시키고 있다. 잘 변하지 않던 기후에도 변화가 일어난다. 기후변화에 의한 기상이변도 자주 발생한다. 산업혁명 이후 불과 200년도 안 된 기간에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상승했다. 지금 추세라면 금세기 이전에 기온이 2도 이상 올라 생태계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2015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평균 기온이 2도 상승하면 생물종의 20∼30%가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기온 상승폭을 2도 이하로 낮추기 위해서는 1870년 이후 누적된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을 790기가톤으로 제한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허용된 배출량의 3분의 2를 이미 써버린 상태다. 남은 배출허용량, 즉 탄소예산 약 250기가톤을 각국이 배분하여 탄소 배출을 극적으로 줄여가야 할 텐데, 2030년 이전에 탄소예산이 소진될 공산이 크다. 탄소예산이 소진된다는 것은 이산화탄소를 더이상 배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이 제로(0)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배출량과 감축량이 상쇄되어 순배출이 없게 되는 탄소중립(Net Zero)을 실현해야 한다. 이미 70여 개국이 이런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우리나라도 최근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2050년까지 달성할 것이라고 했다.
많은 나라들이 이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현대문명은 석유와 석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가히 탄소의존적 문명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탄소와의 결별이 쉽지 않은 것이다. 아직도 120개 이상의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표방하지 않고 있고, 미국처럼 주요한 탄소배출국의 기후 정책이 국내 정치에 따라 요동치기도 한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주권국가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각국의 탄소 감축 약속을 강제할 효과적인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기환경과학 교과서의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진다. “대기는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치며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생명이 태어날 때부터 함께하는 공기는 한시도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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