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전시 ‘숨, 그림 한 잔’
20세기 유럽 로컬 회화 소개
국내 미술시장 확대 위해 기획
불황에도 작품 절반 이상 판매
“아니, 이 불황에 빨간딱지(판매된 그림에 붙이는 빨간 스티커)가 이렇게 많아?”
10일 서울 중구의 갤러리 스페이스mm을 찾은 한 관객이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열리는 소규모 전시 ‘숨, 그림 한 잔’의 풍경이다. 7일 개막한 전시는 알음알음 찾아온 관객에게 작품 22점 중 절반 이상을 판매했다. 유명 작가 개인전도, 대형 갤러리 기획전도 아닌 전시에서 이례적 풍경이다.
‘숨, 그림 한 잔’은 독립 큐레이터 허유림 씨가 기획했다. 그가 최근 수년간 유럽 로컬 갤러리 및 경매를 통해 수집한 20세기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 강지수 미술교사, 이세라 임상심리학 박사, 차우진 음악평론가의 감상평도 곁들여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저렴한 가격과 그림의 탄탄한 기본기다. 기획 취지를 묻자 허 큐레이터는 이렇게 설명했다.
“미술 시장이 발달한 국가에서는 손재주나 기교만으로 가격이 월등히 높아지지 않습니다. 작품의 미학적, 미술사적 가치가 더 중요하죠. 그 덕분에 일반인과 중산층 컬렉터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마음먹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살 수 있습니다.”
허 큐레이터는 그간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행하는 ‘미술 시장 리포트’를 통해 미술 시장 양극화를 지적해 왔다. 국내 미술 시장은 상위 10개 화랑의 시장 점유율이 75.8%에 달하고, 경매는 총 10개 중 2개 회사가 시장의 85.6%를 차지해 심한 쏠림 현상을 보였다. 여러 단계로 세분되기보다 비싼 작품만 과하게 많은 까닭에 초보 컬렉터가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턱없이 부족했다.
8월 발간된 ‘신진작가 문제와 한국 미술 시장의 편향성’에 따르면 ‘향후 미술작품 구매 의향이 없는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1위로 꼽았다. 허 큐레이터는 “리포트로만 말하기보다 전시로 직접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는데 예상외로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시장에 걸린 그림 중에는 작가나 작품명이 미상인 것도 있다. 전시장을 찾은 일반인들은 작품의 외적 요소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스스로 구매를 결정했다. 허 큐레이터는 “컬렉터가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켜야 시장도 다양해지는데, 그간 국내는 작품 외적 요소인 학력이나 인맥, 수상 경력 등이 과하게 작용했다”며 “이 때문에 1970년대 아파트 한 채 값으로 팔린 작품들이 지금은 1000만 원대에 거래되는 광경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에서도 소비자를 염두에 둔 시장용 작품과 미술관용 작품을 구분하는 등 다양화가 이뤄지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3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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