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에는 최근 건물 4층 높이의 거대한 설비가 들어섰다.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한 폐수가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 ‘무방류(ZLD·Zero Liquid Discharge) 시스템’이다. 세계 제련소 중에서 상압(常壓)식 증발농축 방식의 무방류 시스템을 설치한 곳은 석포제련소가 처음이다.
영풍은 폐수 방류로 인한 낙동강 오염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했다. 현재도 배출 허용치보다 낮은 수준으로 폐수를 정수해 방류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장 밖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방류 시스템은 이달 중 최종 점검을 마친 뒤 다음 달부터 본격 가동된다.
○ 세계 4위 제련소의 ‘폐수 제로(0)’ 선언
석포제련소는 1970년 설립된 국내 첫 아연 제련소다.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4위 규모다. 영풍 자회사의 총 아연 생산량은 세계 1위(점유율 9.2%)다. 이 같은 눈부신 성장에는 명암이 있었다. 석포제련소는 국내 제련산업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끈 효자 기업이지만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수가 낙동강 수질을 악화시킨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영풍은 이런 오명을 벗기 위해 2019년 세계 최고 물 관리 기업인 수에즈워터테크놀로지의 무방류 시스템을 도입했다. 지난해 11월 설치를 끝내고 현재 시험 운영 중이다. 설치 비용만 320억 원이 투입됐고, 매년 운영비로 92억 원이 들어간다. 기존 정수 방식보다 연간 운영비가 18억 원가량 늘어난다.
무방류 시스템은 긴 원통 모양의 증발농축기(evaporator) 3기와 불순물을 고체로 농축하는 결정화기(crystallizer) 1대로 구성된다. 먼저 1차 정수를 거친 폐수를 끌어와 100∼110도의 고온에서 끓인다. 이때 발생한 깨끗한 수증기는 액화돼 공업용수로 재사용한다. 남은 불순물은 반복되는 농축 과정을 거쳐 딱딱한 케이크 형태로 수거된다. 하루 약 2000t의 폐수가 깨끗한 물과 17t가량의 고체 폐기물로 바뀌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외부로 배출되는 물질은 하얀 수증기가 전부다. 색깔 탓에 오염 물질이 함유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성분은 환경 기준치 이하라는 게 영풍 측 설명이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문만기 석포제련소 부장은 “현재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배출 허용치는 m³당 8ppm인데, 무방류 시스템에서 배출되는 양은 0.03ppm 수준이라 기준치보다 훨씬 낮다”고 밝혔다.
○하루 2000t 수자원 절약
무방류 시스템의 또 다른 장점은 수자원 재활용이다. 무방류 시스템이 개발된 것도 미국 텍사스주 등 물이 귀한 지역에서 수자원을 아껴 쓰기 위해서였다. 석포제련소는 하루 1만∼1만5000t의 물을 낙동강에서 끌어다 쓴다. 하루 2000t을 재사용하면 그만큼 취수량을 줄일 수 있다. 4인 가족 1700가구가 하루에 쓰는 양이다. 특히 수량이 부족한 갈수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강조되면서 전통적인 굴뚝산업에 속한 기업들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영풍도 오염 물질이 땅과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석포제련소 지하에 침출수 차단 시설을 추가하고 있다. 공장과 하천 사이에 지하 암반층까지 약 2km 길이의 차수 시설을 만드는 것이다. 2023년까지 총 430억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박영민 석포제련소장(부사장)은 “무방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1차 지하수 차단 시설 설치가 끝나는 올해 말쯤에는 오염원 감소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며 “‘낙동강 수질오염 제로’ 프로젝트를 통해 주민들의 신뢰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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