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민, 이번엔 ‘아버지와 함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18일 03시 00분


서울시립미술관 ‘호민과 재환’展
민중미술가 주재환-만화가 주호민
예리하고 유쾌한 父子의 첫 협업
발랄하게 사회 풀어낸 130여점 전시

주호민, ‘무한동력’ 2008년 중 표지, 라이트박스 디지털 출력, 140×200cm.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주호민, ‘무한동력’ 2008년 중 표지, 라이트박스 디지털 출력, 140×200cm.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어린 호민이가 누워 있어 그대로 (가장자리를) 연필로 본 뜬 다음 모양에 맞춰 쇼핑백을 붙여 ‘쇼핑맨’을 만들었어요. 저도 모르게 도운 거죠.”(주재환 작가)

“어릴 때 아버지 작품은 재미있다고만 여겼어요. 만화가가 돼 보니 사회적 의미를 유머러스하게 참 잘 풀어내셨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주호민 작가)

‘신과 함께’로 유명한 웹툰 작가 주호민(40)과 아버지인 민중미술가 주재환(81)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7일 열린 협업 전시 ‘호민과 재환’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자(父子)가 작업을 함께한 건 처음이다. 주호민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신기하면서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워 중간에 도망가려고 했는데 학예사에게 잡혀 열심히 하게 됐다”며 웃었다.

주호민,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 2021년,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220×740cm.
주호민,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 2021년, 후렉스에 디지털 출력, 220×740cm.
18일 시작하는 전시는 회화, 설치작품, 영상, 웹툰 등 130여 점으로 구성된다. 주호민의 ‘계단에서 뭐 하는 거지’는 권력과 위계질서를 풍자한 주재환의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1987년)를 만화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계단을 내려오는 봄비’는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1912년)를 패러디했다.

‘계단에서…’는 가로 220cm, 세로 740cm로 사람들은 오줌이 내려오는 계단에서 서로 끌어주고 때로 프로펠러도 타며 위로 올라가려 한다. 주호민은 “오줌 줄기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억압적인 힘을 의미한다. 제 웹툰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이런 구조를 깨는 모습을 그렸다”고 말했다.

빈 음료수병, 캔을 빨래건조대에 매단 주재환의 설치작품 ‘물 vs 물의 사생아들’은 환경 오염으로 물을 포함해 자연 그대로가 아닌 병에 담긴 것만 마실 수 있는 현실을 비틀었다. 주재환은 “호민이가 음료수를 사왔고 마신 것도 많다”고 했다.

호랑이 울음을 반복 재생하는 ‘호랑이 소리’는 주재환이 ‘창경원’ 야경꾼으로 일하던 당시 밤에 들었던 인상적인 소리를 표현했다. 웹툰 ‘신과 함께’ ‘무한동력’의 주요 장면과 스케치, 콘티를 비롯해 주재환의 회화 ‘짜장면 배달’, 콜라주 ‘아침 햇살’ 등도 배치했다.

저울 위에 회화작품을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미술작품 가격이 형성되는 구조에 대해 비판하고 죽어서야 봉안당의 좋은 위치인 소위 ‘로열층’에 자리할 수 있는 현실 등 사회의 부조리와 그늘을 예리하게 짚으면서도 발랄하게 요리하는 부자의 장기를 확인할 수 있다.

주재환, ‘짜장면 배달’, 1998년, 캔버스에 유채, 54×65cm.
주재환, ‘짜장면 배달’, 1998년, 캔버스에 유채, 54×65cm.
두 작품 가운데 더 마음에 드는 작품을 선택하는 ‘이상형 월드컵’식 대화를 담은 영상은 특히 웃음을 자아낸다. ‘훔친 수건’이라는 글씨가 크게 쓰인 수건으로 만든 작품에 대해 주호민이 “수건은 어디서 났어요”라고 물으면 주재환은 “네 엄마가 구해 왔어. 수건이 자주 없어지니까 저렇게 써 놓은 목욕탕이 있대”라고 답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재기 넘치는 이야기꾼 부자의 작품들을 둘러보면 눈은 즐겁고 기분은 유쾌해진다. 생각할 거리도 남는다.

주호민(왼쪽), 주재환 초상. 부자가 서로를 그렸다
주호민(왼쪽), 주재환 초상. 부자가 서로를 그렸다
전시장 입구에는 노란색 동그란 얼굴의 주호민과 모자를 쓴 주재환의 얼굴 그림이 각각 걸려 있다.

“예전에 그렸던 거예요. 다시 보니 호민이와 닮아 호민이 초상으로 정했죠.”(주재환 작가)

“아, 그렇게 해야 재미있게 나오는데…. 마음먹고 그렸더니 재미없어졌어요.”(주호민 작가)

허탈해하는 아들을 보며 아버지는 여유롭게 껄껄 웃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주호민#아버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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