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모르지. 우리가 얼마만큼 높이 나는지. 우리가 얼마만큼 멀리 나는지.” (정광태, 이태원 ‘도요새의 비밀’) “마도요! 젊음의 꿈을 찾는 우린 나그네. 머물 수는 없어라.”(조용필 ‘마도요’)도요새는 지구의 순례자다. 필립 후스라는 미국의 과학자가 붉은가슴도요의 다리에 표식을 한 후 12년 만에 포획을 해보니 평생 52만 km의 거리를 비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겨우 100g 남짓한 이 새가 날아다닌 여정이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38만 km)보다 더 길었다. 그는 이 새에게 ‘문버드(Moon Bird)’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 지구에서 달까지…알락꼬리마도요의 여행
경기 화성호 습지에도 수많은 도요새 종류가 찾아온다. 그중에서 긴 부리와 알록달록한 깃털을 자랑하는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시를 상징하는 ‘시조(市鳥)’다. 이 새는 북극권인 시베리아에서 짝짓기와 알 낳기를 하고, 남반구의 끝자락인 호주, 뉴질랜드에서 월동을 한다. 매년 2만7000km가 넘는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새다.
호주에서 월동 기간을 보낸 이들은 3∼5월이 되면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축적한다. 자기 몸무게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먹이를 먹어치워 2주 만에 체중이 급격하게 불어난다. 에너지를 지방으로 저장시키는데 출발 직전의 도요새를 만져보면 마치 물풍선처럼 출렁일 정도라고 한다. 언제든지 연소할 수 있는 고효율 연료로 꽉 채워둔 상태다.
대집단을 이루어 출발하는 알락꼬리마도요의 목적지는 한반도 서해안. 태평양을 건너오는 1만 km의 구간 동안 먹이는 물론이고 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날개를 접고 쉬거나 잠도 자지 못한다. 오리처럼 물 위에 떠 있을 수 없는 도요새는 물에 빠지면 끝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몰아쳐도 피할 곳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음뿐이다. 서해안에 도착할 때쯤이면 몸무게가 40% 이상 줄어들게 된다. 한 조류학자는 “도요새들은 갯벌에 다리보다 부리가 먼저 닿는다”고 했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라 먹이를 보충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인 것이다.
알락꼬리마도요는 화성의 갯벌에서 긴 부리로 칠게나 갯지렁이를 잡아먹으며 체력을 회복한다. 여름에 시베리아로 날아가 짝짓기를 한 후 알을 낳고 9, 10월에 다시 한반도 서해안을 찾는다. 갓 태어난 새끼들도 화성호 습지에서 무럭무럭 자란다. 그리고 겨울에 다시 호주까지 1만 km를 날아가는 여행을 하는 것이다.
겨울철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가 돌아올 즈음이면 종을 울리며 환영하는 떠들썩한 축제를 연다. 그리고 매년 4월이면 북반구로 떠나는 도요새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면서 모자를 흔들며 휘파람을 불고 기도문을 외우는 도요새 환송식이 열린다고 한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알락꼬리마도요의 수가 매년 30% 가까이 줄고 있다. 중간기착지인 한국과 중국의 황해안 갯벌이 개발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간기착지에서 체력 회복을 충분히 못한 도요새는 죽거나 번식에 성공을 하지 못한다. 새들의 몸속에 수만 년 이어온 내비게이션 능력을 활용해 매년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원대한 꿈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철새들의 멸종을 막기 위해 호주와 뉴질랜드, 러시아, 미국, 중국, 한국, 북한, 동남아시아 국가 등 18개국이 참여하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EAAFP)’이 결성됐다. 화성 습지도 2018년 EAAFP에 의해 국제적 철새 이동 경로 보존 지역으로 공식 지정됐다. 화성 습지는 람사르 국제협약 보존 습지 등재도 진행 중이다.
○수도권 최후의 새들의 천국, 화성 습지
이달 초 박혜정 화성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과 함께 화성 습지 탐사에 나섰다. 화성 방조제를 통해 철새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자 갈대밭에서 개개비(휘파람새)가 “개개개개∼” 울어대는 소리가 정겨웠다. 짝짓기를 하는 새들의 노랫소리였다. 박 사무국장이 들고 온 필드스코프 망원경을 통해서 저어새, 물닭, 뿔논병아리, 검은머리물떼새, 노랑부리백로 등의 멸종위기 희귀 새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모습은 가슴 떨리는 감동이었다. 박 사무국장은 “화성호 습지는 청소년 저어새들이 맘껏 놀 수 있는 ‘홍익대 앞 핫플레이스’”라고 설명했다. 서해안 인근 무인도에서 태어난 어린 저어새들이 기다랗고 넓적한 부리를 휘저어 가며 새우나 작은 물고기를 잡는 연습을 하면서 성장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화성 습지는 매향리 갯벌과 화옹지구 간척지를 합쳐서 일컫는 말이다. 2002년 궁평항과 매향리를 잇는 방조제(9.8km)가 완공되며 만들어진 인공호수가 화성호다. 화성 습지에는 바닷물이 오가는 갯벌,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기수 지역, 담수 습지가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됐다. 봄가을 도요물떼새 이동시기에는 하루 3만~5만 마리의 새들이 관찰된다. 지난달 28, 29일 이상철 박사(인천대 생물자원환경연구소)와 화성환경운동연합 시민생태조사단이 진행한 조사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원청개구리’도 서식 모습이 확인됐다.
새만금 방조제, 평택항과 공단, 시화호 간석지, 인천 신도시·공항 건설 등으로 서해안 갯벌들이 차례로 사라진 후 화성 습지는 수도권에 남은 최후의 대규모 습지다. 한 지역의 갯벌이 사라지면 새들은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을까? 박 사무국장은 “새들은 몸에 내재된 내비게이션에 따라 매년 같은 지점을 향해 수천 km를 날아가는데, 영양 보충을 할 갯벌이 사라져 있으면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대부분 죽는다”고 말했다.
습지 해양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를 뜻하는 ‘블루카본’은 탄소 흡수 속도가 숲 생태계보다 최대 50배 이상 빠르고, 수천 년 동안 탄소를 저장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갯벌의 관광, 산업 등 경제적 가치도 농경지의 100배, 숲의 10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화성 습지 보존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국방부가 2017년 수원 군 공항의 이전 예비후보지로 철새들이 찾는 ‘화옹지구 간척지’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군 공항의 전투기들엔 새들이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발생하는 ‘버드 스트라이크’가 가장 위험하다. 이 때문에 군 공항에서는 철새들을 쫓기 위해 폭음탄이나 초음파를 쏘는 부대를 운영한다. 수도권 개발에 밀려 화성호 습지에 찾아온 새들의 천국이 또다시 위기에 처한 것이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군 공항 이전은 시민들의 의견과 미래 환경생태를 고려해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룡알 화석산지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의 14.5km²(약 440만 평) 땅에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지대처럼 너른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1990년 이후 현재까지 12개 지점에서 200여 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백악기 공룡들의 집단 서식지이다. 갈대와 염생식물 사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걷다 보면 그랜드캐니언에 온 듯한 황량함에 빠져든다. 다큐멘터리 ‘공룡의 땅’, 드라마 ‘무사 백동수’의 촬영지였던 이국적 풍경 속에서 가볍게 여행하기 좋은 길이다.
○가볼 만한 곳
낙조(落照) 명조로 유명한 궁평항은 주변에 해송 군락지와 갯벌이 잘 보전돼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해송숲길 주변에 주차장과 유스호스텔이 들어서는 공사를 마친 후에는 접근이 더욱 쉬워질 것으로 보인다. 50년간 미 공군 폭격훈련장으로 사용됐던 매향리 갯벌에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 조성됐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기념관은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전곡항 마리나는 서해안 최대 요트 정박지로 200여 척의 요트와 보트가 수시로 다닌다. 요트를 타고 나가면 오른쪽에는 누에섬과 탄도항, 왼쪽에는 제부도가 펼쳐져 가슴이 확 뚫린다. 요트 체험은 전곡항 내 매표소에서 신청. 1시간 반짜리 코스 1인당 3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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