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부가 제주 제2공항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제주 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것이다. 국토부가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면 반려 사유를 해소해 평가서를 다시 작성한 뒤 환경부에 협의를 요청해야 한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대규모 토목사업을 시행하기 전 해당 지역의 자연 환경을 파악하고 건설로 인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예측한 후 이에 대한 보전방안이 적정한지 검토하는 절차다. 국토부는 환경부와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끝내지 않으면 공항 건설 기본계획을 고시할 수 없다. 앞서 국토부는 2019년 6월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처음 제출한 뒤 그해 10월 환경부로부터 보완 요청을 받았다. 이후 그해 12월 보완서를 냈지만 곧바로 재보완 요청을 받았다. 이어 약 1년 6개월간 추가 작업 후 올해 6월에 ‘재보완서’를 제출했는데 이번에 또 반려된 것이다.
환경부는 “전문기관의 의견을 받아 검토한 결과, 협의에 필요한 중요사항이 재보완서에 누락됐거나 보완이 미흡했다”며 반려 이유를 설명했다.
○“야생생물 보호·소음영향평가 불충분”
환경부는 사업 초기부터 문제로 지적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호방안에 대한 내용과 제주 고유의 자연지형에 대한 평가가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제주 제2공항 건설은 제주도가 갖고 있는 유·무형 가치의 훼손 여부와 접근의 편리성, 안전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항공기 운항 시 조류 충돌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한 검토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업 예정지에는 대규모 철새도래지가 있고, 이로 인해 항공기와 조류의 충돌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제기됐다. 법정 보호종을 포함한 철새들의 보존 문제는 물론이고 항공기 운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안전상 문제가 있는데, 여기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 소음영향평가에서도 최악일 때의 소음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점, 항공 운행 횟수 모의 예측 결과에 오류가 있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앞서 재보완본을 검토한 국무총리실 산하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은 “소음 영향 면적이 기존 제주공항에 비해 축소 평가돼 있어 확인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멸종위기종과 보전 가치가 있는 특이 지형 훼손 문제에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점도 반려 사유다. 환경부는 국토부가 제시한 사업 예정부지에 다수의 맹꽁이(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가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지만, 이들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고 했다.
또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지형인 숨골(빗물이 지하수로 흘러가는 지형)에 대해서도 지하수 이용에 대한 영향 조사와 보전 방안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판단 미뤄” 비판도
국토부는 일단 반려 사유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2025년 개항 목표에는 차질이 생겼지만 전략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에서 국토부가 다시 평가서를 작성해 재협의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과거 전라남도가 추진하던 흑산공항도 환경부의 반려 결정 뒤 재협의를 통해 최종 추진 결정이 났다.
다만 환경부가 ‘반려’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미룬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영향평가법상 전략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보완 요청은 두 번까지만 가능하다. 환경부는 이미 국토부에 두 차례 보완 요구를 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환경부가 국토부의 사업을 백지화할 수 있는 ‘부동의’나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동의’ 혹은 ‘조건부 동의’라는 결론 대신 공을 다시 국토부로 넘기는 안전한 카드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은 환경부의 ‘반려’ 결정이 나온 직후 “최종 결정권자로서 국토부에 책임을 떠넘기기 전에 ‘부동의’라는 결정을 했어야 했다”며 “환경부가 권한을 회피했다”고 비판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21일 입장문을 내고 유감을 표시했다. 원 지사는 “반려 결정은 곧 부동의 결정을 내릴 정도의 환경훼손 사유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매우 정치적이고 무책임한 정책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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