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가봐야겠다. 올라푸르 엘리아손(54)의 설치미술 작품이 오늘 문 여는 대전의 한 백화점에 상설 전시된다고 한다. 아이슬란드계 덴마크 작가 엘리아손은 자연과 유사한 대상을 만들어 공감각적 체험을 주는 현대미술의 거장이다. 대표작은 2003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서 진행한 ‘날씨 프로젝트’. 35m 높이의 홀에 가습기를 활용해 안개 효과를 내고 수백 개의 노란색 램프로 커다란 인공 태양을 만들어 당시 6개월 동안 20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의 신작이 이 백화점의 193m 높이 전망대에 선보인다니 1993년 대전엑스포 추억을 간직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 같다. 엘리아손은 이번에 전망대 자체를 반짝이는 공공예술로 만들었다. 그의 작품이 설치돼 있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의 하르파 콘서트홀과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미술관에 가 본 적이 있다. 유리와 거울을 활용한 ‘빛의 마술’이 인상적이었다. 이젠 대전에 주목할 계기가 생겼다.
남양주에도 진작 갔어야 했다. 스페인 출신의 유명 산업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47)이 유쾌 발랄한 동물 조각상들로 정원을 꾸민 프리미엄아울렛이 그곳에 있다. 쇼핑공간이 그 어느 곳보다 발 빠르게 예술작품을 선보이는 건 글로벌 트렌드다. 유명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아르헨티나)와 시오타 치하루(일본)는 국내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기에 앞서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에서 작품들을 선보였다.
젊은층이 선호하는 예술작품은 새로운 고객을 모을뿐 아니라 문화 인프라 형성에 기여한다. 웬만한 상품은 온라인에서 살 수 있는 시대에 고객들이 오프라인에 기대하는 건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주는 체험과 휴식이다. 국내에서도 아트와 만난 로컬이 그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젊은 세대에게 지방은 새로운 탐험 영역이기도 하다.
대구야말로 요즘 ‘핫’하다. 대구미술관은 6월부터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인성 등 대구 출신 작가들의 명작이 기증된 이 전시명은 ‘웰컴 홈: 향연’. 지난달 방탄소년단 RM이 찾아와 인증샷을 찍어 올린 후 아트 성지로 떠올랐다. 최은주 대구미술관장은 말한다. “유럽 지방 도시들이 문화예술을 주민 삶에 밀착시켜 왔듯, 살아있는 전통의 토대 위에 부모가 아이 손잡고 미술관을 찾아오는 대구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한국의 지방 도시들이 문화예술에서 가능성을 찾게 된 계기 중 하나는 미술관장의 세대교체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실력을 쌓은 연구 인력들이 최근 지방의 공립 미술관장으로 대거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기획회사를 중간에 두지 않고 본인의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해외 유명 미술관들과 직접 공동전시를 만들어낸다. 탄탄한 연구로 뒷받침된 그 지역만의 ‘스토리’를 보고 들으려 서울의 관람객들이 움직이고 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올라서려면 문화 기획자와 지역 청년 예술가들이 모여 ‘돈 되는’ 플랫폼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젊은층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방에 문화예술 일자리가 늘어난다.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엘리아손 등의 작가들을 13년간 후원한 테이트모던의 ‘유니레버 시리즈’처럼 기업과 지역이 윈윈하는 파트너십이 절실하다. 관건은 일자리다. ‘전문 인력이 서울에 몰려 있어 로컬은 역량이 부족하다’는 선입견부터 버려야 한다. 질 좋은 일자리가 생기면 사람은 몰리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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