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초현실주의 예술, 뉴욕으로[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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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원의 ‘반공여혼’은 화면을 크게 상하로 나눠 하늘은 어두운 암흑에 폭격기 같은 비행체가 떠돌고, 붉은 땅은 괴기스럽게 표현한 인체와 물체들이 배치돼 있다. 6·25전쟁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의 혼령을 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변영원의 ‘반공여혼’은 화면을 크게 상하로 나눠 하늘은 어두운 암흑에 폭격기 같은 비행체가 떠돌고, 붉은 땅은 괴기스럽게 표현한 인체와 물체들이 배치돼 있다. 6·25전쟁 시기에 그린 작품으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의 혼령을 그렸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구두가 발아래에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구두가 사람 머리 위에 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가끔 현실 밖으로 넘어가려 한다. 상상의 세계에서는 시계가 휘어질 수 있다. 아니 해부대 위에 재봉틀과 우산이 함께 오를 수 있다. 바로 일상적 현실 밖의 세계, 그런 세계를 꿈꾸기도 한다. 초현실주의. 상상력의 극대화는 초현실주의를 만들기도 한다.

현재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는 ‘경계 없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beyond Borders)’ 특별전이 지난해 10월 11일 시작해 이달 30일까지 열리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관련 작품 300여 점을 모아 기획한 대규모 전시다.

이 전시는 뉴욕에 이어 영국 런던으로 옮겨 테이트모던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전시 내용은 매우 다채로운 바, 관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주제가 ‘초현실’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초현실주의 전시에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작품 2점이 대여·출품 중이다. 변영원(1921∼1988)의 유화 작품 ‘반공여혼(反共女魂·1952년)’과 임응식(1912∼2001)의 사진작품 ‘정물’(1949년)이다. 변영원은 한국 화단에서 특이한 존재로 입체파적이고 초현실주의적인 추상회화를 선호했다. 너무 이색 화풍을 고수했기 때문인지 대중적 지명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뉴욕과 런던의 세계 최고 미술관에 초대받는 기록을 세웠다.

하기야 지난해 나는 이 작품의 대여 요청 공문을 받아보고 놀란 바 있다. 국제적 초현실주의 전시에 한국 작가? 그것도 변영원과 임응식? 처음에는 의아했지만 이내 나는 대여 요청에 기꺼이 동의했다. 최근 이들 작가의 작품이 수록돼 있는 두툼한 도록을 받아들고 내심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공여혼’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여성의 혼령을 그린 작품이다. 물론 6·25전쟁 시기에 그린 작품이어서 시대적 상처가 들어 있다. 작품은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년)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거친 이미지를 배치해 놓았다.

화면은 크게 상하로 나누어 하늘은 어두운 암흑에 폭격기 같은 비행체가 떠돌고, 붉은 땅은 괴기스럽게 표현한 인체와 물체들이 혼란스럽게 배치돼 있다. 이들의 몸은 갈기갈기 찢겨 있고, 눈알은 튀어나와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기다란 원통형 물건은 대포의 포신 같기도 하고 총알 같기도 하다. 떠돌고 있는 영혼. 그 영혼은 전쟁에 찢겨져 있고, 광란의 시대임을 증거하고 있다. 전쟁 고발의 주제. 참으로 특이한 형식의 작품이다.

임응식의 ‘정물’은 사진 작품이다. 해변의 모래 위에 우뚝 솟은 의수(義手) 같은 오른손과 소라껍데기 하나, 이색적인 구성이다. 일상적 현실 풍경과 거리가 있는 내용이다.

정해창의 ‘인형의 꿈1’은 무대 위 인형들, 특히 계단 위 남자를 통해 무언가 특정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정해창의 ‘인형의 꿈1’은 무대 위 인형들, 특히 계단 위 남자를 통해 무언가 특정 상황을 암시하는 듯하다. 한미사진미술관 소장
뉴욕의 초현실주의 전시에는 한국 작품 2점이 더 출품돼 있다. 정해창(1907∼1968)의 사진 작품 ‘인형의 꿈1’(한미사진미술관 소장)과 구왕삼(1909∼1977)의 사진 작품 ‘무제’(개인 소장)이다.

정해창의 작품은 마치 연극 무대의 한 장면과 같다. 무대 위의 인형들, 특히 계단 위의 남자 모습, 뭔가 특정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의 핵심은 무대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해골이다. 거대한 해골과 함께 있는 인형의 꿈, 과연 그 꿈은 무엇일까. 현실세계 너머의 현실? 일제강점기에 이와 같은 연출과 기록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구왕삼의 작품은 사각 판 위에 한반도 형태를 표현하고, 그 중간에 쇠줄로 묶어 분단을 상징하고 있다. 쇠줄 한복판에는 물고기 한 마리가 놓여 있고, 그 위아래에는 낚싯줄이 있다. 강대국의 낚시터가 된 한반도. 분단 조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특이한 작품이다.

한반도에 초현실주의 등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쿄 미술계와 연결돼 있다. 여러 유학생 가운데 김병기 화가(1916∼)도 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20세기 초반의 새로운 미술운동은 황홀했다. 1903년 독일 표현주의의 탄생으로부터 야수파, 큐비즘, 추상미술, 다다, 그리고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새로운 사조들이 나왔다. 그사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나치의 예술 탄압으로 미술계의 지형 변화도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새로운 예술운동의 발원지가 대개 프랑스 북쪽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북유럽의 이지적인 기운이 작동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1930년대의 도쿄는 그런 유럽의 새로운 예술사조를 한꺼번에 받아들인 상태였다.

추상과 초현실주의 미술의 동시 수용은 혼란스러움, 그 자체였다. 게다가 일본인은 비판도 없이 초현실주의를 받아들였다. 예컨대 살바도르 달리의 극사실적 표현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달리는 초현실주의의 연장이라기보다 종말이었다. 마그리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추상미술이 버린 형상성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달리의 그림에 사막이 나오지만 사실 일본에는 사막이 없다. 지리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추종은 문제가 있다.”(윤범모 ‘백년을 그리다: 102살 현역화가 김병기의 문화예술 비사’·2018년)

도쿄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서 수학한 이중섭의 친구 김병기는 추상회화보다 초현실주의 미술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한국 화단에서 초현실주의 미술은 풍요롭지 않다. 그런데 뉴욕과 런던의 초현실주의 특별전에 한국 작품이 소개되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초현실주의#뉴욕#반공여혼#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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