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전시디자이너 이현숙 씨
현대 조각상 옆 불상… 1400년 간극 초월하는 공통점 찾아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기증 1주년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발길을 멈추는 곳이 있다. 조각가 최종태(90)의 ‘생각하는 여인’(1992년)과 6세기 제작된 국보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이 한 데 놓인 전시실이다.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긴 여인상과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묵상하는 불상은 1400년의 간극을 초월하는 공통점을 지녔다. 사유의 순간을 담았다는 것이다. 두 작품 사이 벽면에는 ‘모르는 것도 두려운 것도 많은 인간은 끊임없이 삶의 본질을 사유한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2만3000점이 넘는 ‘이건희 컬렉션’을 전시하는 건 난제로 꼽혔다. 특정 시대나 문화로 엮을 수 없을 정도로 기증품이 방대해서다. 난제를 받아든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디자이너 이현숙 씨(43)는 기증품을 보관한 수장고에서 오랜 시간 머물며 고민했다. 왜 수집가는 시대는 물론 동·서양을 초월하는 방대한 문화유산을 모았을까. 13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고민 끝에 제작연대나 기법, 문화는 달라도 기증품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준 듯 닮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전시 키워드는 ‘통(通)’이다. 이 씨는 “관람객들에게 시대와 문화를 관통하는 예술세계가 전해지길 바랐다”고 했다. 일례로 그는 보름달을 형상화한 조명을 비춘 벽면 아래 18세기 ‘백자 달항아리’를 놓았다. 바로 옆에는 김환기(1913~1974)가 1950년대 커다란 달항아리와 달을 함께 그린 ‘작품’을 전시했다. 이 씨는 “과거의 유물이 현대 작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며 시대를 관통해왔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수집가의 마음이 관람객에게 통하길 바랐다. 이 씨는 “누구나 자신이 수집해온 문화유산을 누리길 바랐던 기증자의 뜻을 전하기 위해 1부를 수집가의 집처럼 꾸몄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동자석(童子石) 8점이 놓인 중정이 보이고, 중정 벽면에 난 작은 창문 너머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7~1920년)이 자태를 드러낸다. 전시장 초입부터 창 너머로 보여서일까. 모네의 작품이 지척에 있는 듯 가깝게 느껴진다.
“제 의도가 통한 걸까요(웃음). 관람객들이 친구 집 마당에 온 듯 편안하게 전시장 의자에 앉아 창 너머 모네의 그림을 누릴 때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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