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의사이자 미술평론가 김동화씨 ‘그림, 그 사람’ 책으로
화가 8인 작품 속의 무의식 분석
이중섭, 모성적 소에 남성 이미지… 어머니와 하나 되려는 욕망 반영
박수근 ‘앉아 있는 여인’ 등 작품… 감정 억압-인내, 20번 덧칠로 표현
황용엽 ‘인간’속엔 전쟁 상처 담겨 괴기스러운 인간 모습으로 등장
《“그림 속에는 그것을 그린 사람, 즉 작가가 커튼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등 한국 근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엔 작가의 어떠한 내면과 무의식이 녹아 있을까.
지난달 출간된 ‘그림, 그 사람’(아트북스)의 저자인 김동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미술평론가(53)는 박수근 이중섭 진환 황용엽 양달석 김영덕 신학철 서용선 등 한국 근현대 화가 8명의 작품을 바탕으로 이들의 내면을 분석했다. 》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6일 만난 김 씨는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다양한 엽서화로 그린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김 씨는 그의 작품에서 ‘이중섭과 어머니의 강력한 영유아기 애착관계’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이중섭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랍니다. 보통학교 3, 4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을 정도로 과도한 애착관계를 보이죠. 이는 역으로 분리불안을 낳았고, 그게 아내와의 이별을 극도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에도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작가의 욕구가 담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모성적 원형을 간직한 소에 힘차고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 이중섭의 황소”라며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공생적 욕망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물감을 덧칠하는 기법으로 유명한 박수근에 대해선 억압을 작품 활동의 원천으로 꼽았다. “박수근은 가세가 기울어 양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좌절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내재된 억압과 인내가 많게는 20번가량 물감을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겹’으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 온 황용엽(91)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김 씨는 “황용엽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괴기스럽다”며 “작가가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월남하고 6·25전쟁에 참전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겪은 상처가 어둡고 기괴한 인간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했다. 도시의 소외된 인간군상을 다룬 서용선(71)에 대해선 뚜렷한 직업이 없던 그의 아버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서용선의 아버지는 꽃을 키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겼지만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시대상과 문제점을 비판하려는 무의식적 의도가 작품에 담겼습니다.”
의사인 그가 미술에 빠져든 건 신촌 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였던 20년 전 우연히 박수근 화집을 접하면서다.
“종로서적에서 박수근의 그림을 접했을 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꼈어요. 강렬한 느낌에 매료됐죠.”
이후 박수근의 드로잉 ‘초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0여 점의 드로잉을 수집했고, 2019년엔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신간을 준비하며 박수근 진환 양달석 작가의 경우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은 화가들의 내면이 담긴 일종의 정신적 증상입니다. 작가의 삶과 행동 전반을 통해 그 심리까지 파고들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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