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자체 앞다퉈 육아 가구 지원하는 日
‘묻고 더블로 가’ 정책 없인 저출산 해결 난망
지난주 기자 통장에 현금 12만 엔(약 108만 원)이 입금됐다. 광역 지방자치단체인 도쿄도(都)가 보내준 ‘018 서포터’라는 이름의 육아 지원금이다. 도쿄에 거주하면서 0∼18세 아이를 키우면 올해부터 아이 1명당 월 5000엔을 준다. 두 아이를 키우니 월 1만 엔, 1년 치 12만 엔이 한 번에 통장에 꽂혔다.
도쿄 지원금에 소득, 재산 기준은 없다. 도쿄에 주소를 둔 1400만 명 중 200만 명이 이 돈을 받았다. 외국인을 배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일본어를 읽을 줄 몰라 못 받는 외국인이 있을까 봐 한국어, 영어, 중국어 안내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도쿄 논리는 단순하다. 도쿄에 사는 어린이 교육비가 지방보다 1인당 월 8000엔 정도 많이 드니 그 돈 일부를 도쿄도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원금을 준다는 안내문이 왔을 때 신청을 하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월 5만 원도 안 되는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도쿄도지사 선거(7월 4일)를 앞둔 포퓰리즘 정책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아이 2명분의 1년 치 지원금이 연초에 목돈으로 한꺼번에 통장에 꽂히니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 덕에 100만 원 넘는 돈이 생겼다’는 생각에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달리 보였다.
아이 때문에 받는 돈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일본 정부가 지급하는 4개월 치 아동수당이 이달 말 지자체를 통해 들어온다. 3세 미만은 월 1만5000엔, 3세∼중학생은 월 1만 엔인 아동수당 4개월 치를 몰아 받는다. 3세 미만 아이가 둘이라면 한 달도 안 돼 또 100만 원 가깝게 받는다는 뜻이다. 올 4월 이후에는 일본 정부 지원금도 도쿄처럼 소득 제한이 폐지되고 고등학생까지 지급한다. 셋째부터는 기존 월 1만 엔에서 3만 엔으로 3배로 오른다. 일부 기초단체는 더 얹어준다. 도쿄 중심지 미나토(港)구는 자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0세∼고등학생에게 5만 엔어치 상품권을 지급한다.
이 정도면 ‘묻고 더블로 가’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랏빚이 세계 최대라는데도 적어도 저출산 지출에 언론, 시민단체 등이 제기하는 우려는 크지 않다. 향후 5년간 방위비를 2배로 늘리겠다는 방위비 확충을 두고는 야당은 물론 여권 내에서도 신중한 목소리가 있었지만, 육아 지원금 지급만큼은 별다른 이견을 찾기 어렵다.
‘돌다리를 두들긴 뒤 건너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신중한 일본이지만, 저출산 정책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훨씬 빠르고 적극적이다. 한국에서 저출산 정책은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기획재정부 중 어디가 주무 부처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일본은 각 부처에 흩어져 있던 어린이 정책 총괄 기관인 ‘어린이 가정청’을 지난해 신설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직접 주재하는 ‘어린이 미래 전략 회의’에서는 회의를 열 때마다 현금 지급이든 육아휴직 확대든 뭐라도 내놓는다. 최근 저출산 재원 조성을 위해 의료보험료를 월 500엔(약 4500원)가량 추가 징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이 있지만,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논의조차 못 하는 한국보다는 몇 걸음 앞서 있다.
한국은 합계출산율 0.73명의 소멸 위기에 처했는데도 저출산 정책 마련에 있어서는 한가할 정도로 위기감이 없다. 가장 적은 돈을 들이고 출산율을 높이는 방법, 정교한 정책 설계로 저출산을 해결하는 정교한 수단을 찾는다고 한다면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괜찮은 외국 정책은 뭐라도 일단 검토한 뒤 적용해 볼 때다. 아이 1명에 매달 100만 원을 주겠다는 정도의 정책이 과한 예산 낭비로 보인다면 연간 신생아가 20만 명을 밑도는 저출산 반전 모멘텀을 찾긴 어렵다. 속도감 있는 대담한 전략은 한국의 전매특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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