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앞에 두고 ‘윤석열이 아니어도 되는 반부패 시스템’을 주문하고 며칠 뒤인 지난 주말 전직 언론사 사장, 전현직 법조인과 의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제의 주인공은 단연 ‘윤석열’이었다. 윤 총장이 45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것이나 대통령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받아쓰기하듯 메모하는 모습 등 두 사람의 106일 만의 만남을 하나하나 거론했다.
이날 모인 10여 명은 모두 현 정부에 비판적인 사람들이었다. 7월 윤 총장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때까지만 해도 ‘권력의 충견’이라는 시각을 보였다. 그런데 이날은 한결같이 윤 총장을 응원했다. 마지막 대화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졌다. 지금 같은 난세에 윤 총장처럼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윤석열은 어떤가.
아직은 본인이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이 없어 보이고 가능성도 적다고 할 수 있지만, 어찌됐든 이런 대화들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바야흐로 ‘조국 vs 윤석열’의 전쟁이 ‘문재인 vs 윤석열’의 전쟁으로 변해가는 형국에서 그를 탐구해보기로 했다.
○ 30년 지기 석동현 변호사
윤 총장의 30년 지기로 알려진 석동현 변호사를 만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검찰청 공보담당관, 법무부 법무과장, 부산지방검찰청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장을 거친 석 변호사는 2012년 부하 검사와 여성 피의자 간 스캔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스스로 검사장직을 던졌다. 2016년 정계에 입문해 지금은 자유한국당 법률자문을 맡고 있다.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과 특별감찰반 출신인 김태우 검찰 수사관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검찰 사정에 밝은 야권 인사로, 평소 유튜브 출연 등을 통해 윤 총장에게도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석 변호사는 동기인 윤 총장과 서울법대 본고사 시절부터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1979년 1월 내 앞, 앞자리에서 시험을 보던 사람이 윤 총장이다. 그때 일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유는 쉬는 시간만 되면 그의 주변에 네댓 명이 몰려와 ‘이 문제 답이 뭐냐, 수학이 어려웠는데 어떻게 봤냐’며 복기했기 때문이다. ‘쟤들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만 해도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애들이었을 텐데 윤 총장이 그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었다. 좋은 언변과 나긋나긋한 태도가 금세 호감을 갖게 했다.”
석 변호사는 윤석열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어로 ‘호방함, 섬세함, 경직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원칙주의’를 들었다.
“두주불사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한자리에서 생맥주를 1만cc(500cc 20잔)까지 들이켜는 걸 봤다. 윤 총장과 술을 마신 사람들은 그가 취한 모습을 별로 못 봤다는 게 중론이다. 대학 시절부터 좀 남달랐다. 법조문을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살인자가 원한은 있지만 막상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처럼 철학적인 고민을 했다. 무골호인인 것 같으면서도 보스 기질이 있었다. 으스대고 과시하는 게 아니라 진중하면서도, 그 분위기에 반드시 필요한 역할을 하던 사람이다.”
79학번이면 유신 말기인데, 시대를 고민하는 대학생이라면 운동권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니었을까.
“그 시절 잣대로 보면 그렇지만, 운동권이 아니라고 고민이 적었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윤(총장)의 경우 고시에 늦게 붙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고뇌가 컸다는 뜻 아닐까.”
한마디로 낭인이었나.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면 낭인이겠지만 늘 베푸는 사람이었다. 서울대 법대에서 위로 10년, 아래로 10년 ‘윤석열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로 유명했다. 오랫동안 시험공부를 한 덕도 클 것이다. 같이 공부하는 선후배들과 교류하면서 강태공이 낚시하며 세월을 낚듯 고시공부를 했으니 말이다. 윤 총장 집이 당시 서울 신촌이었는데 그 시절 가장 ‘핫’한 곳 아니었나. 구석구석 온갖 군데를 돌아다니며 선후배들과 어울리고 교과서 지식에 현장이라는 살을 붙여나가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 “그가 출세하리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업과 동시에 사시에 합격한 석 변호사는 검찰, 윤 총장은 학교라는 다른 공간에서 살다 9년 만에 조우한다.
“윤 총장이 나보다 8년이나 늦게 사법시험에 붙어 대구지방검찰청에 초임 발령이 났다. 나는 그를 너무 잘 알고 있던 터라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친 검찰 조직에서 너무 위축되지 않고, 또 너무 튀지 않게 마음을 썼다. 검사로서 출발이 워낙 늦어, 검사장이 된다 해도 환갑이 넘어야 할지도 모르는 나이라 조직 내에서 그가 출세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본인도 조급함이 없었고. 그런데 네댓 기수를 두 번이나 건너뛰면서 결국 총장까지 하고 있으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지 않은가.”
2002년 1월 돌연 검찰을 떠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로 일했고 1년 만에 복귀했다. 왜인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늦게 조직에 들어와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윤 총장이 변호사를 한다고 했을 때 ‘너는 열 개를 알면 열다섯, 스무 개를 표현할 수 있는 뛰어난 사람이니 성공할 것’이라고 응원한 기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로 나갔다 다시 검사로 돌아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만큼 조직에서 인정해줬다는 의미고, 나가보니 변호사라는 게 검사처럼 신명이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 아니라는 그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국가정보원(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 때 항명파동으로 시끄러웠지만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도 이 정도 고초에 나갔다면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변호사 일에 대한 환상도 없었을 테고. 검사라는 직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고비 고비마다 자신을 걸 수 있었고, 자신을 다시 받아준 조직에 대한 생각, 명예에 대한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윤 총장은 이후 7~8년 동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연구관, 중수 1·2과장,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부장검사를 거쳐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면서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갔다.
그러다 2013년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함께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이 혼외자 문제로 낙마하고 윤 총장도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의 체포를 강행해 특별수사팀장에서 경질됐다. 윤 총장을 상징하는, “검사장님이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지시를 해 따르지 않았다.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해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나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지방검찰청 한직을 전전하던 그는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팀장으로 발탁되면서 화려하게 컴백했다. 다시 석 변호사의 말이다.
“채 전 총장이 아니었다면 윤의 부활도 없었을 것이다. 기관장으로 나가 있던 사람을 수사팀으로 끌어들인 것은 총장의 판단과 결심이 결정적이다. 다른 총장이었다면 그런 인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4년 후 박영수 특검이 윤석열 검사를 수사팀장으로 다시 끌어들였는데, 무엇보다 그의 수사역량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본다. 여기서 수사역량이란 수사의 맥을 잘 잡고 수사 대상인 상대방을 설득하는 기술을 말한다. 전체 사건을 큰 그림에서 읽고, 상대를 설득할 때도 무조건 잡아 족치거나 탈탈 터는 식이 아니라, 전체 구도를 설명하면서 여기까지는 처벌을 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 적폐청산의 두 얼굴
석 변호사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법조계에서 그를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적폐수사를 하면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위 사법농단이라고 해서 대법원장, 대법관 등 100여 명의 법원 최고 수뇌부들을 조사했다. 법대 위아래 10년 선후배들과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지난 20여 년간 대한민국 법원을 사실상 이끌어온 엘리트 판사들을 검사가 조사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모멸감, 수치심을 느끼지 않았겠나. 그 당시 그를 만난 적이 있는데 괴로움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기자에게 “윤 총장에게 제일 가슴 아팠던 일이 뭔 줄 아느냐”고 물었다.
“바로 변창훈 검사다. 대학은 한참 후배지만 시험 동기 아닌가. 변 검사 수사야말로 검찰의 ‘과격 수사, 비인격 수사의 전형’이었다. 4~5년 전 직장 일을 가지고 집까지 가 뭘 찾을 게 있었겠나. 더구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동료 검사라고 봐주기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겠나. 이화여대 총장과 교수들을 잡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 적폐수사는 한마디로 광기의 수사였다. 여기에는 윤 총장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 두 가지로 나눠 말하고 싶다.”
그게 뭔가.
“모든 게 그렇지만 수사 역시 생물이다. 일단 시작하면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부처마다 우후죽순으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좌파운동권들이 점령군이 돼 보수우파를 궤멸시키려고 지난 정부의 서버를 다 뒤져 이전 정부의 회의자료와 보고서를 다 훑으며 자기네들 시각에서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고소, 고발하는 식으로 검찰에 던졌다. 적폐수사팀들과 대화해보면 자기네들한테 온 산더미 같은 자료 가운데 그나마 선별하고 선별해 수사하고 있다고 하더라. 어쨌든 전국 각 검찰청에서 차출된 검사들이 직제에도 없는 ‘비파’(비공식파견) 형태로 특수부에 배속됐다.
하지만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인 테이블 한켠에는 현 정권을 고발한 사건들도 있었을 텐데, 분명히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것이다. 과거 정부도 정권교체기마다 전 정권의 비리를 조사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돈이 오간 뇌물수수 건을 가지고 실세들을 잡아넣는 등 기준이라는 게 있었다. 이 정부는 행정부의 통상 업무를 ‘직권남용’으로 싸잡아 걸었다. 직권남용을 전가의 보도처럼 썼는데, 이런 식이면 이번 정부는 안 걸릴 것 같나. 사정의 광풍이 불 때 양날의 칼이 돼 다시 자신들을 향하게 될 것이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고 전국 검찰청의 특수부를 축소하는 데는 이 같은 칼을 피하려는 사악한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 윤 총장은 사모펀드 수사 전문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으로 있던 2년여 동안 대여섯 번 찾아가 만났다. 변호인으로 간 게 아니라, 적폐수사에 따른 이런 비판적 여론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이면 검찰 조직 전체가 위험해진다, 탄핵으로 앞 정권을 끌어내린 특별한 정부인데 이전 정부의 숙청 행위에 검찰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검찰 조직은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면서 수위 조절을 당부했다.”
당시 그는 뭐라고 답했나.
“너도 나를 알지 않느냐, 내가 진보정권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아니고, 내 성향은 오히려 보수고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이다. 좌파가 아니다. 정치적 욕심도 없다. 법치에 대한 원칙과 소신을 지킬 뿐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의 캐릭터가 그런가.
“경직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무적 판단을 안 하는 것은 인정한다.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 수사 때도 ‘댓글 몇 개로 여론이 움직였을 리 있겠느냐. 게다가 국정원은 군 이상으로 특별한 조직이니 국민과 국정원을 대결 구도로 만드는 건 조직을 위해서나 너 자신을 위해서나 과유불급이 될 수 있다. 네가 희생될 수 있다’고 직접 말했다.
그러자 그는 ‘선거에 미친 영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댓글이 단 몇 개라도 국정원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더구나 내가 먼저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지 않나. 수사팀이 나를 불렀고, 일을 맡은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수사를 끝내고 사회적 평가, 법원의 평가를 받아보는 게 맞지, 수사하기도 전 왜 하는지, 어디까지 할지 재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하더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에 대해 얘기해보자. 조 전 장관의 아내 정경심의 공소장을 보고 어떤 느낌이 들었나.
“직간접적인 수사 장애 요인이 많았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해 다행스럽다고 생각한다. 이번 공소장에서도 드러났지만 수사팀으로서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하고자 매우 치밀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에 수사는 어떻게 시작됐다고 보나.
“윤 총장의 스타일상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 스스로 판단해 조 전 장관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하다고 보지 않았을까. 이런 임명후보자를 밀고 가다 보면 현 정부에 절대 득이 되지 않는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정부의 공적(公的) 결정 과정이 국민 눈높이에서 벗어나면 대통령 영(令)이 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말이다. 만약 조 전 장관이 일반 교수에서 발탁된 사람이라면 수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으로 권력 핵심에 있으면서 한 일이라면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윤 총장이 사모펀드 수사 전문가라는 말도 있던데.
“참여정부 시절 불법 대선자금 사건,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을 비롯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LIG그룹 기업어음 사건 등을 수사했다. 외환위기 때 론스타도 수사했다. 사모펀드의 ‘먹튀 수법’에 대해 직간접인으로서 수사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또 현역 중 특수 수사를 가장 많이 해본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특수부 검사를 25년 이상 하면 대개 중간에 기획부서에도 몇 년씩 가고 법무부에서도 일하는데 윤 총장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오로지 수사 분야에만 있었다.”
검찰총장이 될 때 개인적으로 반대의견을 전했다고 들었다.
“바로 총장으로 가기보다 1년이라도 고등검찰청이나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게 한직으로 가길 바랐고, 그러리라고 봤다. 검찰 생리를 잘 아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도 파격이었는데, 대통령 임기가 3년이나 남았으니 총장은 언제든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무 빨리 가는 건 당사자를 위해서나, 검찰 조직을 위해서나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듣기로는 처음엔 후보군이 아니었다는데, 막판에 청와대에서 넣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너무 조급하게 보수를 궤멸시키겠다는 모드를 밀고 나간 성급한 인사였고, 그것이 결국 ‘조국 사태’로 칼이 돼 돌아왔다.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좌파의 민낯을 드러낸 정부나, 검찰총장이 돼 그런 수사를 지휘한 윤석열이나 모두 호랑이 등에 탄 격이다. 이제 윤 총장이 호랑이가 돼주길 바란다.
어느 정권이나 3년 차가 되면 내부의 권력 암투를 피할 수 없다. 권력형 비리가 드러날 텐데 윤 총장이 계속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함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 검사들이 매우 파이팅하는 분위기다. 리더의 힘은 이런 데서 나온다. 여태까지 이런 총장은 없었다. 사심이 없고 계속 야전에만 있었으며 어려운 고비마다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는 것이 신뢰의 배경이다.”
이 대목에서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정치를 할까.
“인기로 보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절대 안 할 것이다. 정치는 좌고우면해야 하고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자리 아닌가. 더구나 검찰총장까지 한 사람이 국회로 가는 건 이제 불가능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윤 총장은 지금까지 자신이 걸어온 길이 정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다.”
○ 윤석열의 행보는 ‘시원한 사이다’
석 변호사의 인터뷰를 토대로 검찰 내부 사람들의 좀 더 다양한 의견을 듣고자 검사장을 지낸 전직 고위 관료와 현직 법조계 인사들을 만났다. 이들 대다수는 “윤 총장이 검찰총장이 된 것에 대해 반대여론이 높았다. 기수 파괴로 전도유망한 인재들이 떠났고 ‘윤석열 사단’도 만들어졌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180도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직 검찰 고위직 인사의 말은 달라진 분위기를 대변했다.
“전문가 집단에서 ‘발탁 인사’는 결국 무리수 인사다. 조직 내부의 안정을 위해 좋지 않다. 게다가 윤 총장은 경험이 너무 적었다. 능력에 대해서도 나는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수사하는 사람이다. 뭐든 일처리를 조용하게 하는 사람이 고수 아닌가. 그런데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했다. 어쩌면 조국 사태는 하늘이 윤 총장을 도운 거라고도 할 수 있다. 적폐수사로 검찰 내에 적이 너무 많았다.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하고 그 많은 사람을 교도소로 보낸 데다, 풍비박산 난 가정이 어디 한둘인가. 이렇게 원한을 많이 샀으니, 조국 사태가 없었다면 윤 총장의 미래는 어찌 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본인을 위해서도 조국 사태는 천운을 만난 것이다. 조국 관련 수사는 원칙을 지킨다는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안 할 수 없었을 테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대통령이나 법무부 장관과 척을 지는 검찰총장이라는 게 말이 되나. 이번 사태가 아니었다면 윤 총장이 법조계 안에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가 없었다. 이번 수사로 그나마 조금 묻혔다. 어찌 됐든 요즘 우리는 그를 응원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물었다. 조 전 장관은 과연 구속이 될까. 한 법조계 인사의 말이다.
“이미 정치적으로 죽은 목숨이라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윤 총장 입장에서는 중요하다. 특별한 것이 안 나오면 그 압박을 어떻게 견디겠나. 정치 수사를 해봤지만 수사 당사자가 받는 압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수사팀은 지금 구속을 위해 목을 맬 수밖에 없다. 영장이 기각만 돼도 엄청난 상처를 입을 것이다. 좌파들이 오죽한가. 윤 총장을 죽이려 달려들 텐데. 윤 총장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이번 수사를 잘 마무리하고 옷을 벗는 것이다. 어떻든 고위 공직자로서 임명권자의 뜻을 거슬러 싸운 것 아닌가. 나는 윤 총장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정치를 선택할까. 그리고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 양론이 엇갈렸다.
(부정) “정치를 할지 말지는 그의 선택이지만 우선 법조계 출신이 정치를 하는 것에 반대한다. 해서도 안 된다. 도서관에서 사시공부만 하다 사회 경험이라고 해봐야 온통 죄인들만 만났으니 국민을 죄인으로 보는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정치 지도자로서는 부적합하다. 게다가 윤 총장은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부추기는 형이다. 국가 지도자로서 적합하지 않다.”
(긍정) “사람 나름이다. 윤 총장은 검찰 내에서도 매우 드문 캐릭터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권력에 맞서 모든 것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준 검찰총장은 이제까지 없었다. 선후배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한마디로 ‘놀랍다’고 생각한다. 정치 감각이 없다고 하지만 국정감사장에서 ‘정치9단’ 박지원 의원을 ‘다루는’ 배짱을 보지 않았나. 내부를 똘똘 뭉치게 만드는 리더십도 대단하고. 지도자로서 자질이 충분하고 본다.”
윤석열 대망론은 아직 이르고 섣부르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솔솔 나오는 배경에는 갈수록 답답해지는 현실에서 어디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는 민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보다 야권에 마땅한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또 다들 시류에 편승하고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세태에서 ‘저런 사람이라면 난마처럼 얽힌 작금의 상황을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엿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의 말이다.
“지도자는 시대가 만든다. 시대가 요청하고 국민이 원하면 누구도 거부해서는 안 되고 거부할 수도 없다. 앞에서는 정의를 내세우고 뒤에서는 야합하는 사람들만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잘못된 것을 일도양단하고 미래를 뚫고 나가는 돌파력을 보여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열망이 높다. 가지 치고 얽힌 것을 끊고 구태들을 척결하는 지도자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대망론은 한 번쯤 꿈꿔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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