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안철수 전 의원은 19일 1년 4개월 만에 귀국하면서 20여 분간 정부와 여당은 물론 야당에 대한 비판, 총선 공약성 구상까지 전방위 메시지를 쏟아냈다. 보수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혁신통합추진위원회의 ‘러브콜’을 받아온 안 전 의원은 총선 불출마와 함께 보수통합 참여 가능성에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야권을 향해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제3의 길’을 공식화했다. 정치권에선 “총선을 넘어 2022년 대선을 겨냥한 출사표 같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 “총선 불출마-중도정당” 띄운 안철수
안 전 의원은 이날 오후 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인천공항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500여 명의 지지자들을 향해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지지자들이 “사랑해요 안철수”를 연호하는 가운데 아이패드를 꺼내들고 13분에 걸쳐 귀국 메시지를 읽은 안 전 의원은 5개의 질문에 답하며 비교적 구체적인 향후 구상을 밝혔다.
안 전 의원은 “다시 정치 현장으로 뛰어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 하나, 대한민국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해 호소하기 위함”이라며 “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고 국정 운영의 폭주를 저지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겨냥해선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삶이 결정되는 불공정도 바로잡겠다”고 했다.
준비한 발언 마지막엔 “진영정치에서 벗어나 실용적 중도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독자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안 전 의원은 “일단 당 내외 여러분들을 만나 뵙고 상의하려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 대신 “신당으로 총선 출마를 하느냐”는 질문엔 “출마하지 않는다. 저는 간절하게 대한민국이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드리러 왔다”고 밝혔다. 자신의 불출마를 동력으로 삼아 다시 한번 여야를 초월한 제3지대 돌풍을 일으켜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안 전 의원이 이날 회견을 호남 유권자들에 대한 사과로 시작한 것도 이런 구상과 무관치 않다. “영호남 화합, 국민통합이 필요하다는 신념으로 바른미래당을 만들었지만 합당 과정에서 국민의당을 지지해주셨던 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면서 “무척 서운하셨을 것이고 늦었지만 죄송하다”고 했다. 20일 시작되는 안 전 의원의 공식 일정도 국립서울현충원 참배에 이어 곧바로 광주 5·18민주묘역 참배로 짜였다. 2016년 총선에서 호남을 석권했던 국민의당 ‘시즌 2’를 재현해 보겠다는 것. 안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을 탈당한 지 2개월 만에 국민의당을 창당해 호남 의석 28석 중 23석을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광주 일정에 대해 안 전 의원은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도리”라고만 했다.
안 전 의원은 조만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만나 손 대표 퇴진 문제를 비롯한 당 진로를 논의할 예정이다. 안 전 의원 측 관계자는 “호남에서 시작해 수도권-중도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 대표와 논의가 잘 되지 않으면 독자신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플랜B로 거론되고 있다. 안 전 대표가 최근 대학들이 밀집한 서울 서대문구 신촌에 새 사무실을 마련한 것도 “젊고 중도적인 신당을 하겠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 “관심 없다”며 일단 선 그은 보수통합 논의
안 전 의원은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추진 중인 보수통합 논의와 관련해선 “관심 없다”면서 “야권도 혁신적인 변화가 꼭 필요하다. 진영 대결식의 일대일 구도로 가는 건 정부 여당이 바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권에서 혁신 경쟁을 통해 국민의 선택권을 넓히면 일대일보다도 합이 더 큰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대한민국 문제 기저에는 현 정권의 진영논리에 입각한 배제의 정치와 과거 지향적이며 무능한 국정운영, 그 반대편에는 스스로 혁신하지 못하며 반사이익에만 의존하려는 야당이 있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날 공항에는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권은희 김수민 신용현 이동섭 이태규 김삼화 최도자 의원과 손학규 대표의 측근 임재훈 사무총장 등이 도착 2시간 전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렸지만, 한국당이나 새보수당 측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안 전 의원이 일단 보수통합 논의와는 선을 그었지만 총선이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든 야권통합이나 선거연대 논의 테이블에 앉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여전하다. 안 전 의원의 중도정당 지지율이 뜻대로 올라가지 않거나 야권의 ‘반(反)문재인 연대’ 요구가 거세질 경우 결국 통합 논의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안 전 의원이 본인 불출마 등 결기를 보여주긴 했지만 어떤 신당을 만들 것인지 각론은 여전히 모호하다”며 “반문연대의 큰 가치에 동의한다고 한 만큼 조만간 접촉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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