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은 4일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 1심 판결을 선고한 재판부에 대한 탄핵 청원이 나온 후 첫 관련 입장을 낸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기자단에 전달한 시무식사에서 “사회 각 영역에서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고, 그러한 갈등과 대립이 법원으로 밀려드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때로는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 법관 개개인에 대해 공격이 가해지는 우려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어 “갈등이 사건화되어 법원으로 오는 순간 법관에게는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할 무거운 책무가 주어진다”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처럼 법관이 짊어지는 부담이 적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헌법상의 책무를 이행해야 하는 독립된 법관의 사명감으로 부디 그 무게와 고독을 이겨 내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저는 대법원장으로서 헌법적 책무를 항시 잊지 않고,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부당한 외부의 공격에 대해서는 의연하고 단호하게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법원장의 이같은 발언은 앞서 지난달 23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정경심 1심 재판부의 탄핵을 요구합니다’라는 청원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된다. 해당 청원은 게시 하루만인 24일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하는 기준인 20만명 동의를 넘긴 데 이어 사흘만에 30만명을 돌파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반성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현재의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충분히 그 성과와 노력을 인정받고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운 것이 냉정한 현실”이라며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지난 잘못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성찰”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문제되고 있는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것뿐 아니라, 사법부의 본질적 역할인 재판 그 자체에 대한 자기반성도 필요하다”며 “재심으로 비로소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그간 겪어야 했던 고통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동안 복역한 윤성여 씨가 법원 재심을 통해 31년 만에 무죄 선고를 받은 사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법원장은 “우리가 굳건히 지켜야 할 것과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을 구별하고 개혁과 변화의 내적 동력을 얻어 실천할 때, 비로소 사법부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대법원장은 ‘좋은 재판’에 대해 “분쟁으로 법원을 찾은 국민이 빨리 본래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첫 심급부터 충실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며 “절차적 만족뿐 아니라 올바른 결론 도출을 위해서도 당사자들이 법정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등법원 부장판사 직위 폐지, 윤리감사관 제도 변경, 법관 장기근무제도 시행 등 올해 새로 시작되는 제도를 언급하며 “모두 ‘좋은 재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의 시무식사는 법원 내부통신망인 코트넷에도 게시됐다. 보통 새해 사법부 첫 행사로 대법원에서는 시무식이 열리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로 생략됐다.
김진하 동아닷컴 기자 jhji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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