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가 강제 추행을 당한 뒤에도 가해자와 어색함 없이 시간을 보내는 등 ‘피해자다움’을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대학교 같은 과 동기를 준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의 상고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는 대학 친구들과 간 여행에서 추행 사실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것으로 생각해 피고인과 어색하게 보이지 않을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이 발생한 뒤 피고인과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멀티방에서 함께 있었던 것과 관련해 “사건 당일 일어난 일에 관해 피고인으로부터 해명을 듣고 사과를 받기 위한 것이었다”며 “피해자의 이 같은 행동은 친하게 지냈던 피고인으로부터 잠결에 추행을 당한 피해자로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행동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이 사건 발생 후 별다른 어색함이나 두려움 없이 피고인과 시간을 보낸 것을 수긍하기 어렵다고 봐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한 원심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A 씨는 2016년 B 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A 씨는 B 씨 등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놀러가 숙소에서 잠든 B 씨를 강제 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1심은 “A 씨는 증거들에 의해 추행 행위가 인정됨에도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한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자신을 무고하고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모습까지 보인다”면서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또 4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 2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및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A 씨가 범행한 이후에도 B 씨가 A 씨와 단둘이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멀티방에 간 점, B 씨가 오랜 기간 문제를 삼지 않다가 뒤늦게 고소한 점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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