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그 여잔 지금 뭘 하고 있나요?…96년 전 독자들의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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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5월 21일 11시 40분


1925년 01월 01일



플래시백
‘광화문 앞을 지금도 6조 앞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광화문 앞 좌우편에 있는 관공서가 어떻게 변천됐는지 아무쪼록 자세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동아일보 1925년 1월 1일자 6면 ‘독자와 기자’란에 소개된 독자 요청입니다. 조선시대 의정부 조직이 1894년 갑오개혁으로 바뀐 지 31년, 조선총독부 체제가 자리 잡은 지 15년이 지난 시점이니까 광화문 앞 모습도 무척 달라졌을 테죠. 변천 내력이 궁금할 듯도 합니다. 그래도 우리 민족에게는 의정부 이조 예조 호조 병조 형조 공조가 늘어서 있던 예전 광화문 앞이 친숙했겠죠.

동아일보는 1925년 신년호부터 독자와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는 고정란을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항목이 ‘기자와 독자’였죠. 독자가 요청하는 주제를 기자가 취재해 소개하고 기자가 제시하는 소재를 독자가 기사로 만들어 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신문은 독자가 만들고 독자를 통해 뉴스를 창조하며 창조할 기회를 얻는다’는 신문제작의 기본원리를 실행한 시도였죠. 일제강점기 아래 민간신문 창립 5년째를 맞아 지면제작에 변화를 주는 한편 ‘혁신’을 내세우며 독자 확보 경쟁에 나선 조선일보를 의식한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대상은 바로 인물, 그중에서도 여자였습니다.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의 근황이며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경성 재등장,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의 소식을 물어왔죠. 단발미인 강향란과 개성 난봉가로 유명했던 권애라, 여자고학생상조회 회장 정종명, 기생 출신 의열단원 현계옥도 문의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로 일제 밀정이었던 배정자의 현재도 알고 싶어 했죠. 남자로는 청산리대첩의 주역 김좌진과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 이완용을 살해하려던 이재명의 유족, 개화당의 주역 김옥균 등에 그쳤습니다.

김마리아는 일제 고문으로 얻은 병 때문에 중국 상하이로 탈출하는 뱃길에서 몇 번이나 까무러쳤고 고통을 달래려고 미리 준비한 몰핀을 여러 차례 맞았다고 했죠. 미국에서 주경야독하는 모습이 근황이었고요. 윤심덕은 남동생의 미국 유학비를 마련하려고 경성 부호와 친하게 지내다 중국 하얼빈에 가 두문불출했다고 전했습니다. 1926년 윤심덕의 최후는 더 큰 충격이었죠. 배정자는 결혼과 동거를 합쳐 8명의 남자, 그것도 주로 연하남과 살았던 것으로 소개됐습니다. ‘변태성욕자’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였죠. 기자는 취재가 힘겨웠던지 인물 요청이 많아 딱 질색이고 더구나 배정자는 쓰기가 고약하다고 푸념까지 했습니다.

3‧1운동 때 33인의 현주소가 궁금하다는 요청에는 48인으로 넓혀서 답했습니다. 이중 손병희 이종일 김홍규 이경섭 4명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렸죠. 특히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의 사장을 지낸 이종일은 천도교 내부 갈등을 겪으면서도 독립의지를 꺾지 않다가 영양실조로 숨진 사실을 전했습니다. 안세환은 105인 사건에 이어 3‧1운동으로 연이어 고문을 당하면서 정신이상이 생겨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했죠. 갑신정변의 풍운아 김옥균은 거사에서 죽음까지를 6회에 걸쳐 다뤘습니다. 인물 외에는 광화문 앞을 지키며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아주던 해태의 소재, 독립문 철거설, 무궁화가 국화로 된 내력 등도 소개했죠.

참, 독자들은 어떤 기사를 썼을까요? 동아일보는 써서 보낼 1차 주제로 △100세 장수자 △12세 신랑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을 제시했습니다. 열한 살에 첫 번째 장가, 열세 살에 두 번째 장가를 간 전북 금산의 꼬마신랑과 제주의 101세 할머니와 남원의 110세 할아버지 원고가 차례로 실렸죠. 이중 제주 101세 할머니 이야기를 쓴 독자는 사진까지 첨부해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로는 독자 기사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열 번 이상 살림한 기생은 독자 불평에 다섯 번 이상으로 기준을 낮췄는데도 마찬가지였죠. 독자 기자의 실험은 아직 일렀던 모양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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