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데이트폭력 중범죄’, 워딩 교묘하게 해 사건 덮으려 해”
이 후보 측 “사건 축소 의도 없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곽대경 교수 “사건을 과소평가하고 심각성 덜 부각시킬 수 있어”
“제 일가 중 일인이 과거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24일 풍문으로만 알려졌던 ‘조카 살인사건 변호’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어 한 말이다.
스토킹 살인사건을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사건의 심각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각에서 터져 나왔다.
또 이 후보는 “(조카의)가족들이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못돼 일가 중 유일한 변호사인 제가 변호를 맡았다. 정치인이 된 후여서 많이 망설여졌지만 회피하기 쉽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그가 또 다른 ‘전 여자친구 살인사건’ 변호를 맡아 두 사건 모두 심신미약을 주장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스토킹 살인, 교제 살인 모두 ‘심신미약’으로 변호
이 후보가 조카 변호 사건을 사과한 다음 날인 25일, 이 후보 관련 의혹을 제기해온 이민석 변호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은 인권변호사가 아니다. 파렴치한 사회악들을 변호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06년 5월 어버이날 새벽에 스토킹한 여성의 집에 쳐들어가 여성과 여성의 어머니를 난자해 죽이고 아버지까지 죽이려다 실패한 살인마를 변호했다. 이재명은 황당하게도 심신미약을 주장했다”며 “칼을 준비해 여성의 집에 쳐들어가 딸과 어머니를 19번 18번을 찌른 희대의 살인마를 변호하며 심신미약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사형당해도 마땅한 살인마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사과한 살인은 ‘암사동 모녀 살인 사건’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던 잔혹한 사건이다.
2006년 5월 8일 새벽 김모 씨가 서울 강동구 암사동 아파트 5층에 있는 A 씨 집을 찾아와 흉기를 휘둘러 A 씨와 A 씨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숨졌고, 아버지 B 씨는 김 씨를 피해 5층에서 옆 건물 3층 옥상으로 뛰어내렸다가 온몸에 골절상을 입었다. 김 씨 주장으론 경제적 무능과 학력 차이 등을 이유로 A 씨 부모가 결혼에 반대해 A 씨와 헤어진 상태였다. 이별 이후 김 씨는 A 씨에게 지속해서 협박 메일을 보내며 스토킹을 해왔다.
김 씨는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1심과 2심 모두 변호사인 외삼촌 이 후보의 변호를 받았다. 이 후보는 1심 재판 과정에서 조카인 김 씨의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범행이 계획범죄였다는 점, 수법의 잔인함, 전 여자친구 아버지 B 씨의 상해 및 후유증이 중대하다는 점 등의 이유로 김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특히 김 씨는 유족들에게 전혀 피해 회복을 하지 않았으며, 병원 치료를 받는 B 씨에게 치료비 일부조차도 지급하지 않았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김 씨는 2007년 2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이 변호사는 또한 이 후보가 변론을 맡았던 다른 이별 살인 사건도 언급했다. 그는 “2007년 8월 3일 여성이 헤어지자고 하자 회칼과 농약을 준비해 여성의 집에 쳐들어간 자가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가 언급한 사건은 2007년 8월 3일 가해자 이모 씨가 C 씨에게 이별 통보를 받자 회칼과 농약을 준비해 집에 들어가 딸이 보는 앞에서 C 씨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 변호사는 “이재명은 농약과 회칼을 준비해 딸까지 방에 가두고 딸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를 죽인 자가 심신미약·심신상실이라고 변호한 것이다”라며 “무기징역을 선고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자이지만 겨우 징역 15년만 선고받았다. 내년 8월이면 이자의 형기는 만료된다”고 비판했다.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쓴 것”
두 사건 중 조카 김 씨의 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7월이다. 배우 김부선 씨가 이 후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과정에서 강용석 변호사의 언급으로 처음 알려졌다. 김부선 씨가 진짜로 이 후보와 연인 관계였다고 입증하기 위해 이 후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라면서 해당 내용을 자신의 변호인인 강 변호사를 통해 법정에서 진술한 것이다.
이 후보가 뒤늦게 친척의 일이라 어쩔 수 없이 변론했다고 사과했으나 이미 정계 입문한 이후 맡은 사건이라는 점, 인권변호사로 알려진 기존 이미지와 상반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조카가 범인인 사건에서는 ‘심신 미약’을 주장한 이 후보가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때는 “정신질환 감형에 분노한다”라고 한 사실까지 알려지며 더욱 비판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후보는 사건을 데이트 폭력 중범죄라고 표현했으나 엄연한 스토킹 살인 범죄이다.
이 후보가 사과를 전한 페이스북 게시물에 한 누리꾼은 “그냥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카가 데이트하다가 그냥 몇 대 때린 것처럼 보인다. 워딩을 교묘하게 해서 사건의 심각성을 덮는다”라고 지적했다. 누리꾼들은 “집요하게 스토킹하다 여자와 어머니를 수십 차례 찔러 죽이고 아버지를 반신불수로 만든 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나”, “살인을 ‘심신미약’으로 변호한 게 왜 ‘자신의 아픈 기억’인가”등 반응을 보이며 이 후보의 사과를 비판하고 있다.
세간을 들썩이게 한 잔혹한 흉악범죄를 데이트 폭력이라고 은근슬쩍 축소해 넘어가려 했다는 비판에 대해 이 후보 측 입장을 들어봤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의도적으로 사건의 심각성을 덮으려 한다는 것은) 야당 측의 주장”이라며 사건을 축소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데이트 폭력이라는 것이 법률용어도 아니고 범위를 한정 지을 수 없다”며 “일반인들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이 후보의 데이트 폭력 중범죄 표현에 대해 “부적절하다”라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일방적 스토킹에 의한 살인사건을 데이트 폭력이라고 한다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특정한 관계가 형성됐던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며 “(데이트 폭력 표현은) 사건을 과소평가하고 심각성을 덜 부각할 수 있다. 사건을 부드럽게 표현하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우린 평생 고통 속에…참 뻔뻔하다”
이런 가운데, 암사동 모녀 살인 사건의 생존자인 아버지 B 씨의 언론 인터뷰가 전해졌다. 이 후보의 조카 김 씨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B 씨는 26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가정을 망가뜨린 살인 범죄에 대해 데이트 폭력이라니”라고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사건 당시에도 사과는 없었고 현재까지도 이 후보 일가 측으로부터 사과 연락이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갑자기 TV에서 사과 비슷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채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며 “우리는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제 와서 예전 일을 끄집어내 보란 듯 얘기하는데 참 뻔뻔하다”라고 호소했다.
이 후보는 “일가 중 일인이 과거 데이트 폭력 중범죄를 저질렀다”며 과거 변호 이력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그 사과는 피해자에게도, 대중들에게도 전달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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