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가 공산국가인가.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가로주택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도심 곳곳에서 원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면적 1만㎡ 미만의 가로구역에서 기존 건물을 허물고 소규모 아파트를 짓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정부가 2018년 각종 사업절차를 간소화한 특례법을 시행하며 현재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간소화를 위해 기본 절차를 생략하다 보니 초기단계부터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사례1: 경기도 의정부 가능동에 거주하는 A 씨는 지난해 1월 시청에서 신축 인허가를 받아 오래된 자신의 집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런데 인근에서 추진하던 가로주택정비사업에 A 씨 건물이 포함됐다는 소식을 4월 경 뒤늦게야 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의정부 시청에 문의하니 이미 4월 중에 도시재생과에서 연번동의서를 발행했다는 답변을 들었다. A 씨는 이렇게 자신이 직접 확인하기까지 의정부 시청이나 사업추진 대표자로부터 계획 및 추진 방식에 대해 전달받은 바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조합설립을 위한 안내책자에는 ▲ 1. 주민설명회 → ▲ 2. 개략적인 사업계획(안) 및 임시준비위 구성 → ▲ 3. 의정부청 연번동의서 검인 신청’ 순으로 기재되어 있지만 1, 2번은 진행된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사례 2: 경기도 부천에 단독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B 씨. 몇 년 전 개발업자가 컬러 프린트물을 들고 나타나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구슬리고 다녔다고 한다. B 씨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1~2년 흐른 뒤 갑자기 ‘가로주택정비사업조합이 결성됐으니 조합에 가입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입 안 한다고 하자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어느 날 ‘인가가 났다’는 말을 주위에서 전해 들었다. 어리둥절한 B 씨는 “어찌된 영문이냐”며 구청에 사업구역 지정 지도를 보여 달라했다. B 씨는 “난 안 하겠다 했는데, 반대 한 내 집과 옆집은 사업구역에 들어가 있고, 아무 말도 없던 아래 집들은 빠져 있더라”며 황당해했다.
#사례 3: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5층 규모 상가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C 씨. 지난해 10월 말경 자신의 건물을 포함해 가로주택정비사업이 진행 되고 있으며, 약 2주 후 창립총회가 열린다는 통보를 문자와 우편으로 받았다고 했다. C 씨는 “이게 무슨 소리냐?”냐며 황당해했다. 이 구역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하는 C 씨 건물은 비교적 오래되지 않았고, 자영업 세입자가 가장 많다. 특히 블록 가장자리에 구별된 형태로 있어 강제로 끼워 넣을 명분이 없는데 말도 없이 포함해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C 씨는 “사업에 반대할 것 같으니 내게는 의사도 묻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내 건물을 끼워 넣어 통보했다”며 분개했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공청회나 설명회도 없었다고 했다.
인천의 한 가로구역에서 약 7년 전 새 건물을 짓고 월세를 받으며 노후를 보내고 있던 노부부도 변두리에 있던 자신의 건물이 갑자기 정비사업에 편입됐다는 날벼락 소식을 접하고 하소연했다.
건설 · 부동산 전문 법부법인 정의의 강동원 변호사는 “비슷한 사연으로 호소하는 사례가 많이 접수되고 있다”며 “주요 사례들을 보면, 열악한 지역에서 새 건물 지은 분들은 동네 한가운데 보다는 길가 코너에 있고, 그런 분들은 정비사업에서 빠지고 싶은데, 사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거기가 좋은 자리니까 끼어서 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교육자료 “희망하는 주민만을 대상으로”
가로주택사업은 기본적으로 ‘토지 등 소유자’(주민합의체)가 추진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신탁개발사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정비사업을 원치 않는 사람들의 건물까지 포함하는 방식이다.
2018년 발행한 서울시의 가로주택정비사업 교육자료에는 ‘노후한 주택에 거주하는 주민 중 가로주택정비사업을 희망하는 주민들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이에 C 씨와 세입자들은 인허가권을 가진 구청에 제척해 줄 것을 수 차례 요청했지만 구청은 “자체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C 씨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은 가로주택을 희망하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데 굳이 반대하는 건물을 사업구역에 편입시켜 내몰고 있다”며 “과거 상가 쪽 반대자가 많았던 사실을 당국이 알면서도, 지분이 제일 큰 상가 소유자의 의사 확인도 없이 사업구역에 편입시키는 연번동의서를 발행해 준건 업무해태 아닌가”라고 항의했다.
이 같은 원성에 대해 인허가권을 가진 이승로 성북 구청장에게 입장을 묻자 성북구 측은 “사업의 시행 여부 및 내용은 토지 등 소유자의 의견과 동의를 통하여 추진되는 것으로 사업시행구역의 지정이나 구역의 편입, 제척 등에 관하여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이라고 답변했다. 주민들끼리 결정한 일이니 구청이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로주택정비사업에 반발하는 세입자들에 대해선 “세입자에 관한 법령은 정해져 있지 않아 민원이 발생할 경우 소유주와 세입자, 추진대표 간에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것은 애초 제도의 허술함에 원인이 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대규모로 개발되는 재개발 · 재건축사업과 달리 사업 초반에 ‘기본계획수립’ ‘구역지정’ ‘추진위원회구성’ 등의 절차가 생략돼 있다. 애초부터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완전 ‘개법’…항의할 수 없게끔 진행”
가로주택정비사업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적용받는 일반 재개발·재건축과 달리 ‘빈집및소규모주택정비에관한특례법’(소규모주택정비법)을 따른다. 과거엔 도정법에 있었지만 2018년 사업절차 간소화를 위해 별도의 특례법으로 분리했다.
그러다 보니 특례법으로 축약하는 과정에서 생략된 조문이 많다. 기본계획수립, 구역지정, 추진위원회 설립 등의 단계를 생략해 사업초기 단계의 각종 행정절차를 줄여버렸다. 가장 허술한 부분은 주민동의를 구하는 방법과 창립총회 요건이다. 조합설립인가를 받으려면 주민 동의율 80%를 채워야 하는데 미달이어도 다 채웠다고 선전하며 창립총회부터 여는 경우가 많다. 이 분야 사정을 잘 아는 성북구의 한 구의원은 “그 사람들은 동의율 미달이어도 한 서너 집 남았다고 선전하고 다닌다. 완전 ‘개법’이다. 자기들 마음대로다”고 지적했다.
세입자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C 씨 건물 세입자들은 “사업 진행상황 등을 물으려 개발업체를 찾아갔더니 당신들은 말할 권한이 없다며 쫓아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반대 의사를 밝히는 현수막 조차 걸지도 못하게 누군가 다 밤중에 뜯어가 버렸다고 했다.
전국철거민연합회 관계자는 “기간을 굉장히 간소화해 항의를 할 수 없게끔 진행되는 곳이 많다.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린다. 구역이 크면 목소리가 커지는데, 구역이 작으니 당사자들이 어리둥절 하는 사이 끝난다. 옛날 같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소규모 재건축’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할 수 있게 벌려 놨다. 개발이익 다툼을 관공서에서 짊어지면 욕을 먹으니 자꾸 민영으로 내뱉는 것이다. 피해가 많을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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