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 5m 물탱크 위에 197명이 올라탈 수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2년 8월 19일 있었던 일이다. 태풍 ‘베티’가 몰고 온 폭우로 남한강이 범람하면서 44가구 250여명이 살던 단양읍 증도리 시루섬(6만㎡) 전체가 침수됐다.
고립된 주민들은 불어나는 물을 피해 섬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지름 약 5m, 높이 6m 크기의 물탱크뿐이었다.
주민들은 물탱크 위로 올라갔고, 청년들이 바깥에서 서로 팔짱을 낀 채 스크럼을 짜 노약자들을 보호했다. 빽빽한 밀도 속에 몸이 점차 감각을 잃어갈 때 주민들은 “움직이면 죽는다 꼼짝하지 마라”라고 외치며 밤을 지새웠다.
이 과정에서 백일 된 아기가 압박을 못 이겨 숨을 거뒀으나 아기 엄마는 이웃들이 동요할까 봐 밤새 죽은 아기를 껴안은 채 속으로 슬픔을 삼켰다. 동요가 일어 움직이면 많은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날이 밝으면서 구조대가 모습을 드러냈고, 14시간 만에 사투는 끝이 났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됐다는 슬픈 역사가 남아있다.
이 사건 50주기를 맞아 단양군은 21일 단양문화체육센터에서 ‘시루섬의 기적’을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 참여한 단양중 1·3학년 학생들은 당시의 물탱크 크기로 만든 지름 5m, 높이 30㎝ 크기의 모형에 차례로 올라섰다. 실제로는 6m 높이였으나, 행사에서는 학생들의 안전을 고려해 30cm 정도로 만들었다.
시루섬에서 생존했던 것과 같은 인원인 197번째 학생이 모형 위에 오르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리를 찾은 생존자 김은자 씨(66)는 “시커먼 물바다 속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회상했다.
단양군은 다음 달 19일 단양역 광장에서 생존 주민 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루섬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기적을 만든 주인공들이 50년 만에 상봉하는 이번 행사에는 극한의 상황을 딛고 목숨을 건진 이들의 ‘합동 생일잔치’와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사람들을 위한 천도재가 진행된다.
시루섬이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이전의 풍경과 주민 생활상 등이 담긴 사진도 전시할 예정이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강인한 단양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라며 “시루섬의 기적을 단양을 알리는 소중한 역사 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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